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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승원 경기지방중소기업청장
관사생활을 하다 보니 아침마다 걸어서 출근하는데, 길지 않은 출근길에는 작은 초등학교가 있다. 매일 아침 겪지만 볼 때마다 신선한 모습이 있는데, 바로 학교 앞에 있는 건널목을 지키는 깨끗한 양복차림의 교장 선생님께서 건널목을 건너는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챙기고 늦게 건너오는 학생들은 직접 손을 잡아 안전하게 등교시키는 모습이다. 모든 학생들에게 ‘안녕’ 또는 ‘안녕하세요’ 하고 친절한 말을 건네며, 어떤 학생들은 친숙한지 가벼운 포옹을 하며 인사하는 모습도 보인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웃으며 인사하고 밝은 표정으로 등교하는 게 보기 참 좋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데 매일 빠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학생들을 지키는 선생님은 필자를 포함해 출근길 사람들의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

오늘 오전에는 하반기에 개최할 창업 관련 행사의 점검회의가 있었다. 경기지방중소기업청에서 경기도의 창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협업하고 있는 창업선도대학 4곳과 합동으로 창업자와 예비창업자를 위한 행사를 준비 중인데 이들 행사의 전반적인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필자는 준비사항을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성공한 선배 창업가의 성공 경험을 듣고 이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창업콘서트’ 예산이 무려 2천700만 원이나 잡혀 있었던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하니 장소 사용 비용도 안들고 그 밖에 특별히 들어가는 비용도 없을텐데….

내역을 들어보니 가관이었다. 대부분 예산이 참석자에게 지급되는 수당이었는데, 소위 성공한 창업가를 강의에 초청하는 데 시간당 700만 원이 책정되고, 창업토크쇼 사회자에게 700만 원, 그 외 참석자에게도 수백만 원, 특히 벤처투자를 받으려는 예비창업자의 기획안을 심사하러 오는 VC(심사위원)들에게도 200만 원씩 비용이 책정돼 있는 게 아닌가? 준비하는 측에서 보통 이런 분들을 섭외하는데 이 정도 비용이 든다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더 놀라웠다. 필자의 편협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성공한 벤처창업가 정도 되는 사람들이 꼭 돈을 받고 강의를 해야 하는 것일까? 척박한 창업환경에서 어렵사리 성공한 사업가라면 자신을 모델로 삼으려는 후배들을 위해 재능기부를 하면 안 되는 것인가? 또한 이미 성공한 사람에게 몇 백만 원은 그다지 큰 돈도 못될 텐데. 또한 VC들은 좋은 예비 창업가를 발굴해 투자하는 것이 본연의 업무인데 굳이 돈을 받으면서 오려고 할까? 좋은 투자 기회만 있다면 그냥도 달려올 것인데…(물론 훌륭한 VC들은 돈보다는 시간이 아까워 이런 행사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것을 알지만). 나랏돈이 아니고 자기 돈으로 행사를 추진한다면 이리 운영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랜 토의 끝에 재능기부를 하겠다는 우수한 창업가를 찾고 토크 콘서트에도 기꺼이 참여하겠다는 훌륭한 기업인들을 발굴할 수 있었고, 덕분에 행사 계획을 일부 수용해 예산을 대폭 절감할 수 있었다. 또한 절약한 돈을 활용해 예비 창업자나 학생들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을 하는데 사용할 수 있었다. 창업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관련 예산이 증가하고 있지만 예산 증가 자체에 못지않게 구체적인 사업내역을 잘 검토해 주어진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건전한 창업생태계’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조직의 크기는 그 조직 리더의 크기를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국가건 기업이건 하다못해 작은 단체만 하더라도 대표나 CEO의 마음가짐과 자세에 따라 성과나 위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교장 선생님이 운영하는 학교의 운영 성과나 학교 분위기를 필자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학생들을 위해 잘 운영되고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학생들의 등굣길과 그 과정에서 학생들과의 따뜻한 교감에 그리 관심을 갖는 교장 선생님이 다른 일은 학생들을 위해 얼마나 더 꼼꼼하게 잘 챙기실 것인가? 아침에 겪은 두 가지 일을 겹쳐 생각하며 작은 조직을 맡고 있는 장으로서 깊은 반성과 무거운 책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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