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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어느 변호사가 아들이 다니는 고등학교로부터 학생들에게 ‘법에 대한 얘기’를 들려 달라는 부탁을 받고 바쁜 시간을 내어 학교를 방문했었다. 그런데, 따뜻하게 맞아 주던 교장 선생님의 태도가 강의를 마친 후에 불만스러운 태도로 돌변해 있어서 내심 당황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학생들에게 ‘노동법’과 ‘근로자의 권리’, ‘노동조합’ 등에 대해 얘기한 것을 못마땅해 했다는 것이다.

 그 변호사는 유명한 노동법 전문 변호사였다. 고등학생들에게 노동법에 대해 얘기해 주는 것이 향후 사회생활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판단해 열과 성을 다해 강의에 임했던 것인데, 학교 측에서는 ‘노동’을 강의 주제로 삼은 것 자체를 꺼려하더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이란 단어에 대해 다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자주 있다. ‘노동’을 운운하면, ‘위험스런 좌경인물’로 취급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부나 국민들은 ‘노동’이라는 말보다 ‘근로’라는 말, ‘노동자’라는 말보다 ‘근로자’라는 말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자를 쓰는 중국과 일본이 ‘노동(勞動 또는 勞働’이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만 ‘근로(勤勞)’라고 부르면서 ‘노동’이란 단어를 기피하는 것은 부적절할 수 있다. ‘노동’이란 개념에는 ‘육체노동’뿐 아니라 ‘정신노동’도 포함되며, 특히 지식기반사회라고 불리는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지식노동’의 비중과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렇지만, ‘노동’과 ‘인격’이 분리돼서 생각될 수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는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 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고려한다면, 초·중·고 학생들에게 법(규범)에 대한 교육을 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노동법 수업시간’도 필요하다(특히 올해부터 전국의 중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자유학기 활동’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생존하는 동안 대부분 ‘노동’을 통해 삶에 필요한 경제적 원천을 얻기 때문에, 근로자의 권리·의무가 무엇인지에 대해 어릴 적부터 가르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는 노동법에 대한 수업시간은 전혀 없고, 일반적인 법에 대한 수업시간마저도 태부족하다. 특히, 현행 고등학교 교과목에 편성돼 있는 ‘법과 정치’라는 과목은 대입 수능시험에서 사회탐구 영역의 9개 선택과목 중 하나일 뿐이어서 학생들이 공부의 부담이 적고 상대적으로 고득점이 용이한 다른 과목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법(규범)’, ‘민주적 기본질서’, ‘국민의 기본권’, ‘건전한 노사관계 질서’ 등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용어야 어떻든, ‘노동자’를 좀 더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자. 그들은 우리 자신의 모습이고, 우리 부모형제와 자손의 모습이며, 우리 이웃의 모습이다. 우리가 이만큼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된 것도 선배 노동자들의 노력과 희생의 덕택이다.

 그런데, 최근 경제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다수의 노동자들이 실직의 위기를 맞고 있고,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 조건하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초·중·고 학생들에게 노동법 수업시간을 통해 이를 공부하고 고민해 보도록 하자. 또한, ‘일’의 가치와 모럴 및 법규를 익히게 하고, 장래에 어떤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도 사색해 보도록 하자.

 오늘은 추분으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다. ‘노’와 ‘사’가 추분의 낮과 밤처럼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가르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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