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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지난 월요일 아침, 여러 신문의 1면에 500일 앞으로 다가온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축하하는 문화공연이 펼쳐진다는 광고를 비롯해 관련 소식들이 실려 국민들의 관심을 끌려는 노력을 보였다. 올림픽이 더 이상 ‘국가의 대사’로 보는 시각이 크게 줄어들었고, 올림픽을 통해 하나 된 ‘국민’이 되고 고양되는 ‘애국’을 실천하고 세계 속에서 ‘국가의 격’을 드높인다는 식의 발상 자체가 크게 퇴색돼가는 현실이지만 다른 의미와 새로운 가치, 획기적 상상력의 생산과 재현을 위한 행위로서 높이 평가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올림픽은 그 특성상 대규모 경기장과 숙박시설, 사회기반 인프라 조성 등이 꼭 필요하기에 엄청난 재정이 소요된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의 경우 쏟아 넣은 액수만 물경 500억 달러였다. 국가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올림픽대회 개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가입한 전 세계 205개국 가운데 동·하계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나라가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 러시아 등 7개국뿐이라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데 이견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2018년부터 2022년까지 2년 간격으로 동북아시아 3국에서 동계올림픽과 하계올림픽이 잇따라 열린다. 2018년 평창에서 동계올림픽, 2020년에는 도쿄에서 하계올림픽, 2022년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다는 점이다. 방한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이제는 아시아 시대"라고 의미를 부여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하겠다. 이미 동·하계올림픽을 개최한 일본을 포함해 한국과 중국 등 동북아시아 3개국이 이 반열에 들어선다는 의미가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는 2022년이 되면 두 대회를 모두 개최한 나라는 전 세계 9개국이 되고 북미대륙과 유럽을 제외하면 동북아 3개 국민이 유일하다.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염려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2014 인천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처럼 진행상의 어수선함은 별개로 치더라도 진부한 국가주의적 상상력, 퓨전도 아니고 전통도 아닌 기이한 의상과 무용, 아시아가 인천에서 하나가 된다는 식의 무모한 선전, 한류 스타들로 무대를 채운 졸렬함, 남발된 구호 등등은 국제행사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오히려 대회의 품격은 물론 재정적자 등의 문제점만 남겼다는 점과 이를 확인하고서도 2년여가 지나도록 국제적 스포츠이벤트를 준비하는 우리의 무신경이 여실히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회의 무신경한 모습이 안타깝다.

 9월 22일부터 이틀간 평창에서 열린 제1회 한중일 스포츠장관회의는 ‘올림픽의 아시아시대’를 더욱 알차게 가꾸기 위한 회의였다. 여기서 3개국 관계 장관들은 지역의 평화공존을 위해 함께 노력하면서 성공적인 대회를 위해 서로 협력하고 사회발전을 도모한다는 6개항의 평창선언문을 내놓았다. 정치·군사적으로 적대감이 고조되는 시기에 3개국이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손을 잡기로 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일진대 그날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성공개최를 위한 정부지원 촉구결의안’을 표결하기로 했다가 흐지부지 논의조차 못해 보고 말았다. 이 정부지원 촉구 결의안에는 예산부족분에 대한 정부의 지원, 관광자원 개발, 지방세 특례제한법,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포함돼 시급한 일임에도 정치논리에 밀려 뒷전이 됐고, 평창 동계올림픽 및 국제경기지원 특별위원회가 본회의에서 제안 설명조차 못했다. 중국과 일본까지 우리의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힘을 보태겠다고 했는데 정작 우리 국회는 외면하고 말았다. 누구의 잘잘못에 앞서 한심한 일이 아닌가.

 2004년 아테네올림픽 당시 한국갤럽의 조사를 보면 "국민들은 밤잠을 설치며 응원을 하느라 생활리듬이 깨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그동안의 조사를 보면 올림픽을 통해 "생활이 즐거워졌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2004년 아테네가 78%, 2010년 밴쿠버가 89%, 2012년 런던이 84%였으나 이후 대회에서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리우는 55%였다고 한다. 퇴색하는 올림픽, 관심이 저하되는 속에서 당대적 의미가 더욱 뒷걸음치고 자칫 적자투성이의 역효과만 부각될 수도 있다.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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