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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벌써 10월이 되었습니다. 10월이 되면 왠지 설레는 일들, 아름다운 일들이 다가올 것 같은 예감이 들곤 해서 참 좋습니다. 아마 더운 여름날의 기나긴 터널을 막 빠져나와서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이제 곧 세상은 아름다운 단풍들로 채워져서 우리네 마음 역시 넉넉하게 물들어갈 겁니다.

「장자」 ‘추수’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시월의 창문을 열어보겠습니다.

장자에게는 혜시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아는 것도 많고 말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혜시가 양나라에서 재상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장자가 다른 볼 일로 양나라에 온 것을 알게 된 혜시의 측근이 "장자는 양나라의 재상이 되려고 온 것입니다"라고 거짓 보고를 합니다.

혜시는 무척 두려웠습니다. 장자의 인품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사들을 풀어 장자가 궁궐에 도착하기 전에 체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장자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며칠 후에 이 소식을 들은 장자가 먼저 혜시에게로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게, 남쪽 지방에 원추라고 하는 봉황이 있네. 이 새는 남해에서 북해까지 날아가는 동안 오동나무가 아니면 내려와 쉬지를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않고, 달콤한 맛이 나는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를 않네. 이렇게 원추는 성스럽고 정결한 새지.

그런데 어느 날, 부엉이 한 마리가 썩은 쥐를 발견하고는 머리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다가 원추를 보았네. 부엉이는 자기가 발견한 쥐를 빼앗길까봐 원추를 향해 ‘훠이, 훠이’하고 소리를 쳤지. 지금 혜시 자네가 군사를 풀어 나를 찾은 모양인데, 양나라 재상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훠이’하고 위협하는 소리를 지른 것인가?"

장자의 눈에 비친 재상 자리는 그저 썩은 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혜시의 눈에는 버릴 수 없는 보물이었던 셈입니다. 장자의 눈에는 그 어떤 명성이나 지위, 그리고 권력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가장 행복한 삶을 나날이 살아갈 수만 있다면 더 이상 필요한 게 없었을 겁니다.

이렇게 통이 큰 장자이니까 양나라보다 더 큰 나라인 초나라에서도 장자에게 재상자리를 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도 장자는 강가에서 낚시를 하며 소일하고 있는데, 초나라 왕이 보낸 신하 두 명이 와서 말합니다.

"선생님, 나라를 위해 큰일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장자는 이런 비유로 그 제안을 물리칩니다.

"초나라에는 신령스러운 거북이 한 마리가 있다고 들었소이다. 그런데 그 거북은 죽은 지 3천 년이나 되었는데도, 초나라 왕이 값비싼 상자 속에 잘 싸서 종묘에 보관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물어 보겠소이다. 두 분이 만약 그 거북이라면, 죽은 뒤에 뼈를 남겨 사람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고 싶소, 아니면 지금 살아서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고 돌아다니고 싶소?"

이 물음에 신하들은 당연히 살아서 진흙탕 속이지만 돌아다니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장자는 "그렇소이다. 두 분은 돌아가시오. 내가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고 다니며 살 수 있도록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시오"라는 말로 초왕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재상이라는 높은 자리에는 엄청난 권력과 재물과 명예가 따라올 텐데도 그것을 거절할 만큼 장자는 ‘자유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어느 것에도 구속될 것이 없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를 구속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권력자들의 입장에서 그의 존재는 참으로 두려운 존재였을 겁니다.

어느 것에도 휘둘리지 않고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장자가 말하는 ‘봉황’ 즉, ‘자유인’일 겁니다. 이런 자유인들의 눈에는 곧 피어날 코스모스와 들국화들이 참으로 아름답고 귀하게 다가오겠지요. 바로 이런 삶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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