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TV 드라마의 폭발적 인기를 계기로 올 초 서울 강서구와 파주시 사이에 벌어졌던 구암 허준(1539~1615) 선생 출생지 논란의 중심에는 선생의 묘가 있다.
 
그동안 허준을 둘러싼 논쟁은 크게 출생연도와 출생지 두 가지 였다.
 
출생연도는 몇몇 연구가들에 의해 1539년(중종 34년)으로 밝혀졌지만 출생지는 여전히 논란 중이다.
 
TV 드라마 방영을 계기로 촉발됐던 출생지 논란 이전까지는 김포 양천(현재 서울 강서구)설이 유력했다.
 
허준의 출생지는 ▶김포 양천(현 강서구) ▶파주 장단 ▶전남 담양 ▶경남 산청 등 4가지 설이 주장돼 왔지만 각각 근거와 논리가 부족했고 그나마 학계의 관심 또한 크지 않았다.
 
그런데 향토사학자인 이윤희(36) 파주시 문화진흥위원회 전문위원이 4가지 근거를 제시하며 파주 장단설을 강력히 주장하고 나서 강서구-파주의 출생지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이다.
 
이 위원은 ▶8·15 광복 전까지 우근리(현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에 양천 허씨집 성촌이 있었고 ▶허준의 묘소가 13세손의 땅이며, 선조와 모친, 후손들의 묘소가 장단지역에 있는 등 선영임이 확인됐고 ▶아들 겸 이 파주 목사를 지냈다는 점 등을 파주 장단설의 근거로 들고 있다 .
 
또 허준의 행적을 가장 많이 기록한 미암일기의 저자 미암 유희춘(513∼1577)과 허준, 그리고 고양 8현중 한 사람인 김정국(1485∼1541) 사이에 학문적 관심과 교류 흔적이 나타나 주 교류 무대가 지리적으로 가까운 고양과 파주일 가능성이 높은 점을 또 한가지 근거로 제시했다.
 
이 위원은 “조선조 매장 풍습을 고려할 때 장지의 선택은 ▶선영 ▶개인 사유지 ▶연고지 등에 거의 포함되는 것으로 볼때 파주 장단이 허씨 가문의 근거지이고 허준의 고향이자 생장지로 판단할 수 있다”며 “적어도 허준이 출사하는 30세 이전까지 생장지는 파주 장단이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강서구는 “허준이 퇴직 후 김포군 양천현 파릉리(현 서울 강서구 가양2동) 허가바위에서 동의보감을 쓰다 세상을 떴으며 이는 파릉산집에 기록돼 있다”며 “나중에 후손들이 묘를 파주로 옮긴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 논란은 이제 2라운드를 맞고 있다.
 
양 자치단체가 서로 자기 지역이 허준의 출생지라는 사실을 기정 사실화하기 위해 기념사업 추진에 가속력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파주시는 2억6천만원을 들여 15평 규모의 재실을 만들고 묘역을 정비하는 작업에 곧 착수하는 한편 잡초가 무성한 민통선 내 묘소 진입로 1.2㎞를 정비하는 등 관광 코스 개발을 구상하고 있다.
 
강서구도 이에 맞서 허가바위 근처에 허준기념관 건립을 위한 설계가 한창이다.
 
이 곳에는 한의학 연구소, 한약재 전시관, 한약 재배단지, 유물 전시관이 들어서게 되는데 내년초 착공이 가능할 것으로 강서구는 보고 있다.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허준의 묘(경기도 기념물 128호)는 파주시 장단면 하포리 서부전선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있다.
 
차량을 이용, 임진강 통일대교를 건너 민간인 통제지역으로 들어간 뒤 왕복 2∼4차선 도로를 따라 10여분 가다 보면 입구 표석이 있는 장단면 하포리가 나오고 여기에서 비포장도로를 따라 1㎞ 가량을 더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군의 허가를 받아 일정 절차에 따라 들어가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오히려 생태계 보고 민통선의 자연환경을 즐길 수 있고, 가끔 뽕나무 열매 오디와 산딸기도 맛볼 수 있는 몇 안되는 민통선 문화재 답사 코스다.
 
허준 묘역은 50평 정도로 하단에 허준과 부인(안동 김씨) 묘가 쌍분으로 조성돼 있고, 그 위 중앙에 허준 생모의 묘소 한 기가 더 있다.
 
이 묘는 지난 91년 고문서 연구가 이양재씨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됐다.
 
이씨가 양천 허씨 족보의 `장단 하포 광암동 쌍분'이란 기록을 근거로 이 일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작게 쪼개져 땅속에 묻혀 있다 발견된 비문에서 `양평X X성공신 X준'이라고 새겨져 있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 위원은 “조선시대 최고의 의성 허준에 대한 연구와 재평가 작업이 최근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이런 작업이 중요한 것은 후대가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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