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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제6공화국 성립 이후 김영삼·김대중은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이 되는 게 당연시됐다. 이어 노무현·이명박·박근혜를 거치는 동안 우리는 인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 국가의 불행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절감하게 됐다.

 얼마 전 대선을 향해 보폭을 넓히고 있는 소위 잠룡 13명의 이름을 한 명씩 불러주며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좋을 만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여론조사(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가 있었는데 지지율 선두권인 반기문과 문재인 모두 ‘그렇다’보다는 ‘아니다’의 응답이 높았다. 여타 인물들은 ‘아니다’가 ‘그렇다’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고 하니 어찌 보면 리더로서의 역량이나 비전을 검증해야 한다는 의사표시일수도 있겠고, 자칫하면 내년 대선에서 예전처럼 ‘막연한 기대감’으로 투표장에 들어가는 일이 반복될지도 모른다.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날로 양극화가 심화되는 경제 상황,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미래가치를 떠올리면 실로 암담하지 않을 국민이 있을까. 주변을 돌아보자. 우리가 평가하기를 망언(妄言)이나 일삼고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는 극우 정치인 일본의 아베 총리는 집권 4년차에 62%(요미우리신문)의 열렬한 국민 지지를 받고 있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그의 경제정책 ‘아베노믹스’가 일본의 정치·경제를 무기력과 패배주의에서 벗어나게 하고 있으며 일본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높은 점수를 받는 이유라고 한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어떠한가. ‘도광양회(韜光養晦: 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림)’의 정책을 폐기함으로써 중국에 호의적인 국제 환경을 해쳤고, 북한의 핵실험을 암묵적으로 동조해 동북아의 안정을 크게 위협하게 만들었다는 지적과 함께 인권변호사의 대량 구속에 지금껏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감옥에 쳐 넣어 두고 있어 독재자의 아미지가 굳어지고 있으나 "결혼을 원한다면 시(진핑)아저씨 같은 사람하고 하세요. 시아저씨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영웅, 세상이 어떻게 변한다 해도 전진하네"라는 찬양가요가 연일 울려 퍼지고 있다. 부패추방의 강력한 리더십이 국민들에게 박수 받고 있다는 것이다. 더하여 외국에 대해 ‘할 말은 하는 지도자’로 칭송되고 있다.

 오늘의 한국 정치에 대해 개탄하고 분노하면서 정치지도자들의 ‘부패’, ‘무능’, ‘비겁’, ‘시대착오적 탐욕’을 비판하는 국민이 대다수일진데 이웃 나라 같은 현상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반동적 군사쿠데타가 아니라 ‘직선제 선거 탓’이라는 사회 과학자들의 중론이다. 상당수 유권자들이 아직도 ‘무조건 지지’라는 덫에 갇혀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이다. 소위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고, 전파력이 큰 대중매체가 항상 그들 편에 서 있는데 정치지배자들이 제대로 하려는 노력이 왜 필요하느냐는 결론이다. 서글픈 현상이지만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이 강자(사실은 기득권층일 뿐이다)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건 흔한 일이다. 강자숭배주의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모습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까닭은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려면 결국 강자 편에 붙는 것이 이익과 안전을 도모하는 간편한 수단임을 잘 알기 때문이리라.

 강자는 좋아하는 것이 ‘아부’이고 싫어하는 것이 ‘견제’다. 자질이 부족한 지도자 역시 마찬가지다. 위기 역시 그렇다. 위기는 개인이건 국가건 항상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지 못하고 오히려 위기를 키우는 건 시스템의 결함도 있겠으나 리더의 자질이 더 크다. 역사서 「자치통감」을 기술한 송나라의 사마광은 2천수백 년 전 위문후라는 군주의 사례를 들어 ‘임금이 어질어야 신하가 곧다(君仁郞臣直)’라고 갈파했다. 아부하는 신하를 거느리면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지도자는 없다. ‘위기를 증폭시키는’ 사회과학적 연구의 일치된 결론은 견제가 없는 정권의 독주다. 정치지배자가 견제 받지 않는 사회에서는 파괴적 갈등 구조가 만연할 뿐이다. 지금 우리는 이런 사실을 두 눈으로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제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이 다가온다. 일흔 살 되는 대통령제 정부는 오직 수직적 명령체계에 따라서만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완고한 늙은이가 돼 버렸다 이 난제를 푸는 첫 단추는 내년 대선에서 뚜렷한 비전과 통찰력을 지닌 인물을 선택하는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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