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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을 겁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무척 즐겁게 몰입할 수 있습니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로 바꾸면 누구라도 행복하겠지요.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주어진 일이나 해야 하는 일을 바라보는 생각을 바꾸는 겁니다.

 그레일링이란 분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과 ‘글을 쓰고 싶다’는 사람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자는 주목을 받고 싶은 사람이지만, 후자는 책상 위에서 고독의 시간을 보내며 오래 준비하는 사람이다. 전자는 작가의 지위와 명예를 원하는 사람이지만, 후자는 글을 쓰는 모든 과정을 중시한다. 결국 후자가 무엇이든지 이루어낸다"고 말합니다.

 결과는 늘 좋은 모습으로 그려지겠지만, 과정은 실제로 힘겹고 고된 일들로 채워져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과정의 힘겨움을 견뎌내지 못하면 결과 또한 오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과정의 고독함을 이겨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결과가 감동을 주는 이유일 겁니다.

 프랑스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 샤니라는 죄수가 있었습니다. 샤니는 나폴레옹에게 미움을 받아 억울하게 갇힌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나폴레옹을 원망하면서 살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그저 그 순간순간을 의미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마당에 나가니까 두 개의 돌 사이 좁은 틈에 파란 새싹 하나가 솟아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샤니는 간수에게 새싹을 살려야 한다며 새싹을 옮길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간수는 한마디로 거절했죠. 몇 번을 부탁해도 소용이 없자, 샤니는 나폴레옹에게 직접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기회를 보았습니다.

 어느 날, 자신의 손수건에 사연을 적어 간수에게 부탁합니다. 다행히도 샤니의 글은 나폴레옹의 부인에게 전해졌습니다. 사연을 알게 된 부인은 나폴레옹에게 "돌 틈 사이에 솟아나온 새싹 하나를 이렇게 귀하게 보는 사람을 옥에 가두어 두어선 안 된다"며 석방을 강력하게 청했습니다. 샤니는 석방되었습니다.

 자신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면, 그제서야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치 빠르게 달릴 때는 보지 못하던 것을 넘어졌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 사회는 모두가 ‘일등’이 되기 위한 무한 경쟁 속에 빠져 있는 듯 보입니다. 결승전에 가장 먼저 도착하기 위해 좌우를 살필 겨를 없이 달려야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샤니가 볼 수 있었던 아주 작은 새싹을 보지 못하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행복은 일등을 했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은 아닐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등이란 자리를 두고 벌이는 다툼은 늘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고, 서로를 적으로 만들어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등인 내가 아니라 ‘유일한 나’로 거듭나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흉내를 도저히 낼 수 없는 나만의 향기를 내는 존재가 바로 나일 때, 너와 나의 관계는 승자와 패자가 아닌 상생의 관계로 복원이 될 겁니다. 너도 나도 유일한 존재이니까 모두가 승자가 되는 셈이지요.

 미국의 유명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지방의 전문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선배에게, 서울의 어느 대학에서 교수로 있는 후배가 "선배, 전문대학 교수를 하려고 그렇게 어렵게 유학했어요?"라고 물었더니, 선배는 이렇게 멋진 말로 가르침을 주는군요.

 "그래, 너는 좋은 대학의 교수해라, 나는 좋은 교수할 테니."

 좋은 대학의 교수는 명예의 상징으로 끝나버리지만, 좋은 교수는 어디든 학생들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을 겁니다. 행복은 주어진 일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일에 온 마음을 다해 정성을 들이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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