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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순 수원박물관장
지난 2월 25일 수원박물관 관장이 됐다. 그로부터 7개월 수원박물관장으로서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40년 가까운 공직생활 마무리를 이곳 수원박물관에서 하게 될 모양이다. 박물관은 여유롭게 전시를 관람하고 전통문화와 역사를 접하는 문화공간이다.

 겉에서만 보았을 때는 그랬다. 처음 박물관 관장이 됐을 때 그동안 쉼 없이 열정을 쏟았던 공직생활을 여유롭게 마무리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박물관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관장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박물관은 사뭇 달랐다. 두세 시간 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직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고, 지하 수장고에서는 유물을 최적의 상태에서 관리하고자 유물에 적합한 온도와 습도를 맞춰 1년 12달 유물 맞춤형 공간을 유지하고 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풍파를 견디다 훼손된 유물의 원래 모습을 복원하는 보존처리 담당자는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지하에서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잠시 들러 휙 둘러보고 지나쳤던 전시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깃들여 있는지 그전에는 알지 못했다. 아니 관심 밖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박물관을 찾는 대부분의 관람객이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박물관 관장이라는 자리에 있고 보니 그저 흘려보았던 것들이 하나하나 예사롭지 않다. 지금 수원박물관 1층에서 전시되고 있는 기획전시도 마찬가지다. 기획전시실에서는 ‘해방공간 수원, 그 뜨거운 함성’이라는 전시가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지난 9월 9일 개막해 11월 13일까지 전시될 이번 기획전시는 1945년부터 1948년까지 3년 동안 완전하고 새로운 독립 국가를 세우기 위해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그저 관람객으로 전시를 볼 때와 관장이 되어 전시를 보는 느낌이 남다르다. 그전에는 그저 휙 지나쳤다면 이제는 각각의 유물은 왜 여기에 배치됐는지, 전시를 준비한 사람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겨우 두어 달 열리는 전시가 3~4배 긴 준비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도 알게 됐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과정들이 이뤄지고 있었다. 수원박물관장으로 부임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들이다.

 전시뿐만 아니다. 박물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교육, 답사, 문화행사, 특강 등 다양한 프로그램 하나하나에 담당직원들의 노력이 깃들어 있다. 물론 시민을 위한 행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미진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부분은 없는지 꼼꼼히 살피고 수원시민의 문화 욕구를 충족시킬 방법은 없는지 더 고민하고 더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이 하나만은 인정해야겠다.

 백조가 물밑에서 열심히 물갈퀴를 움직이기에 고고한 자태로 물위를 미끄러질 수 있는 것처럼 박물관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자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직원들이 있기에 유지된다는 사실을….

 공직생활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박물관장이 된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박물관은 그저 옛날 물건이 전시되는 곳, 역사, 문화 등 추상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던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유물 하나하나에 깃든 의미가 새롭게 보이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수원의 역사와 문화를 좀 더 관심 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하나만은 말하고 싶다. 박물관으로 가 보시라.

 그 속에서 과거의 우리를 만날 수 있고, 현재를 지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시길 권하고 싶다. 박물관은 수원시민 가까이에 있다. 우아한 백조의 모습처럼 한적하고 조용하지만 그 이면에는 열정과 열기 가득한 곳이 바로 우리 수원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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