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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자연자원이 풍부하지 않으며, 주요 에너지원인 석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이런 불리한 여건을 딛고 경제 발전을 이룩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한 저력이 생긴 요인으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특히 ‘교육열’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국민의 ‘교육열’은 남다르다. 부모들은 자기는 못 먹고 못 입더라도 자식 교육만은 아낌이 없다. 중국 내의 많은 소수민족 중에서도 특히 조선족 동포들의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것을 보면, ‘남다른 교육열’은 아마도 우리 민족의 특성이자 강점인 것 같다. 그렇다면, 지식기반사회라 불리는 21세기를 맞아 어쩌면 우리 민족은 제대로 웅비(雄飛)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 전해진 노벨과학상 소식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일본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연속 3년 동안 배출했고, 과거의 수상자를 포함하면 모두 22명이나 노벨과학상을 수상했다.

 우리는 언제쯤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을까. 작금의 상황을 돌아보면 씁쓸한 느낌이 든다. 많은 이공계대학 재학생들이 (약사가 되려고) 약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위해 학원을 다니고 중퇴하는 바람에 많은 학과에서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이든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모두 ‘눈앞의 돈’만을 쫓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멀리 내다보면, ‘돈이 안 되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철학·역사 등 인문학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문학·음악 등 예술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오스트리아는 음악의 대가인 ‘모차르트’ 덕에, 스페인은 건축의 거장인 ‘가우디’ 덕에 놀라운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평생을 바쳐 한길로 정진하는 ‘고집스러운 사람들’ 즉 ‘외골수’ 또는 ‘소신파’가 많아야 건강한 사회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의 대학교육 정책에는 문제가 있다. ‘취업률’을 대학 평가의 주요 기준으로 삼다 보니, 인문학·문화예술분야의 많은 학과들이 폐지되고 있다. 또한 NCS(국가직무능력표준) 기반 교육과정을 획일적으로 시행하다 보니 대학이 취업준비학원처럼 변모하고 있다. 대학원 출신이 오히려 취업에 불리하다고 하여 석사·박사과정 지원자도 줄고 있다. 이래서야 오랜 시간 동안 성과 실현의 불확실성을 무릅쓰면서 외롭고 힘든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연구자의 길’로 누가 나서겠는가. 요즘에는 교수들조차 학문연구보다는 교육부가 주도하는 구조개혁평가·특성화평가 등을 준비하기 위한 페이퍼 워크에 매달리고 있다. 이런 교육환경이 지속되면 아마도 노벨과학상 수상은 더 멀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헌법은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자율성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교육부는 평가와 예산지원을 통해 대학을 줄세우기하고 있고, 대학은 그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 1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인 안철수 의원은 "교육부를 폐지하고 국가교육위원회로 개편해야 한다"고 종전의 주장을 거듭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인 유성엽 의원도 지난 6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같은 주장을 펼쳤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교육부 폐지 주장을 지지했다(행자부도 없애야 한다고 했다). 그 밖에도 교육부 폐지에 동조하는 정치인과 전문가들이 많다. 다수의 국민들도 정부의 교육개혁 정책을 비판하면서 "교육을 개혁할 것이 아니라 교육부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교육 부문에 투입되는 많은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민의 혈세로 마련된 소중한 예산이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그 효과와 효율을 깊이 따져봐야 한다. 불요불급한 예산을 절감해 가난한 집 아이들도 재능이 있으면 돈 걱정하지 않고 ‘맘 놓고’ 그리고 ‘맘껏’ 공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전폭 지원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미래가 우수 인재 양성의 성패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우수 인재야말로 국가의 보배이며, 이들을 육성할 책임이 국가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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