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jpg
▲ 김윤식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승정원일기 1631년 4월 5일자는 인조(仁祖)가 완평부원군(完平府院君)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을 인견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강하게 인상에 남는 것이 이원익이 84세의 고령에 신병으로 매우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입궐하는 장면이다. 왕과 노재상(老宰相) 간의 예(禮)와 정(情)이 감탄스러울 정도다. 먼저 도승지 이성구가 "완평부원군이 말하기를, ‘지난번 입시 때는 방석에 앉아 들려서 들어갔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을 뿐 아니라 몸도 불편하였습니다. 오늘 입시에는 그렇게 하지 말고 젊은 환관으로 하여금 부축하게 하여 들어가면 마음도 편하고 몸도 편안할 것입니다’ 하였습니다"라고 아뢰자, 인조가 "이미 전교하였다. 외정(外庭)에서는 결코 걸어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되니 견여(肩輿)를 타게 하고, 청(廳) 안에 들어와서는 젊은 환관에게 부축하게 하여 들어오도록 하라"고 명한다.

 그러나 이원익은 중관(中官)을 통해 여전히 "지난번 입시 때는 송구스러운 일이 많았으니, 견여는 그만두고 젊은 환관의 부축을 받아 들어가게 해 달라"고 탄원한다. 이에 인조는 "부디 고사하지 말고 안심하고 들어오라고 말하라"라고 명한다. 결국 인조는 수레 타기를 거부하는 이원익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젊은 환관들로 하여금 부축해 들어오게 한다. 그러면서 인조는 "부축하여 천천히 들어오게 하라. 앉아서 쉬었다가 들어오게 하라"는 등 매우 자상하게 분부한다. 이원익이 마침내 젊은 환관들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오자, "나를 향해 앉으라. 방석에 앉은 채로 들어오라 하였는데 끝내 그냥 들어왔으니 고되지 않은가?"하고 묻는다. 이원익이 "부축을 받아 들어올 수 있기에 감히 앉은 채로 들어오라는 명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여기까지가 나이가 48세 위인 이원익과 인조의 대면 장면이다. 워낙 노대신, 원로여서 그런지 임금이라고 해도 신하를 대하는 예나 정이 예사롭지가 않다. 이날 인조와 이원익의 대화는 가도(島) 변란의 원흉 유흥치(劉興治)의 죽음에 관련한 내용으로 시작되는데 관련해 또 하나 크게 인상 깊은 장면이 나온다. 인조가 아주 솔직하게 "근래에 교화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은 탓에 풍속이 크게 훼손되어 강상(綱常)을 범하는 변고가 줄지어 일어나고 백성들의 원망이 날이 갈수록 더하니, 이는 우매한 내 부덕의 소치이다. 어찌하면 세도(世道)를 되돌려 다시 훌륭한 정사를 펼 수 있겠는가?"라고 이원익에게 묻는 부분이다. 그에 대한 이원익의 직언은 대략 이렇다. "만약 수령이 부세 독촉을 늦춤으로써 자신의 영지를 마지막 보루가 되게 하고 백성을 어루만지고 편히 살게 하여 민심을 얻는다면, 백성이 윗사람을 친애하여 목숨도 기꺼이 버릴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막아 내기 어려운 적은 없게 되고 의지할 수 있는 세력은 생길 것이니, 이는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요즘 백성을 보호하는 수령이 있으면 틀림없이 국사(國事)를 수행하지 않는다는 지목을 받곤 하는데, 이는 크게 불가한 일입니다. 그리고 절용(節用)하여 백성들을 아껴 준 다음에야 국가에 불필요한 낭비가 없어지고 민심을 얻을 수 있으니, 이는 성상께서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신이 들으니, 천하의 마음과 소통할 수 있어야만 천하의 시무(時務)를 알 수 있다 하였습니다. 군신 상하가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삼가 살펴보건대, 성상께서는 자신의 견해를 믿고서 신하들을 경시하고 독단으로 하시는 일이 많습니다. 그리하여 군신 간에 마음과 뜻을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데, 이러고서 잘 다스리고자 한들 그럴 수 있겠습니까."

 인조는 솔직히 수긍한다. "그 말이 매우 옳다. 옛사람이 ‘작은 것을 살피다 큰 것을 놓친다’라고 했는데, 나는 지려(志慮)가 원대하지 못하고 식견이 미치지 못하는 탓에 사실 자잘한 일을 살피느라 원대한 것을 놓치는 병통이 있다. 지금 들은 경의 말을 잊지 않고 명심하겠다." 임금이나 신하나 실로 솔직하고 떳떳하고 정의롭다. 무릇 일개 수령에서 임금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예와 정으로써 직언, 소통하며 애민(愛民)한다면 무엇이 환난을 부르랴. 이 승정원일기에 적힌 내용은 조선 인조 9년, 지금으로부터 385년 전 이야기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