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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은성 안성시장
조선시대 인재의 등용은 글짓기였다. 과거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서는 역사와 문학, 철학에 대한 소견이 필요했다. 이는 단순히 유교 경전을 달달 외워서만도 안 됐고 여기에 자신만의 창의적인 문구와 생각이 중요했다. 지난 10월 15일, 안성시 칠장사에서는 제8회 어사 박문수 전국백일장이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번 어사 박문수 전국백일장은 650명의 중고생들이 참여해 운문과 산문으로 나눠 뜨거운 경합을 벌였다.

 어사 박문수 백일장은 대상이 국회의장상으로, 장원은 교육부장관상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그리고 경기도지사상과 한경대학교총장상, 안성시장상, 안성교육장상 등 총 27개를 시상하는 우리나라 대표 백일장 가운데 하나이다.

 칠장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고려시대인 1014년 혜소국사에 의해 크게 중수됐고, 1623년 인목왕후가 광해군에 의해 희생된 아버지와 아들 영창대군을 위해 왕실에서 관할하는 원당으로 삼고 오불회괘불탱, 인목대비친필족자, 금광명최승왕경 등을 남긴 유서 깊은 고찰이다. 그러면 왜 칠장사에서 어사 박문수 백일장을 개최하는 것일까?

 전설에 따르면 조선 중기, 박문수라는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에 올라가는 길에 칠장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나한전에 유과를 올리고 불공을 드린 후 잠을 자는데 그날 밤 꿈에 나한님이 나타나서 과거시험의 시제를 알려줬다. 하지만 총 8구의 답안 중 7구를 가르쳐주고 나머지 한 구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 날 박문수는 과거 시험 보러 가는 내내 꿈속에서 가르쳐 준 글과 마지막 시구를 생각하며 한양으로 갔다. 시험에는 꿈에서 가르쳐 준 것과 똑같은 문제가 나왔고 결과는 ‘장원급제’였다. 그것이 유명한 ‘몽중등과시(夢中登科詩)’인데, 이 시의 원제목은 ‘낙조(落照)’로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이 가운데 마지막 "단발한 초동이 피리를 불며 돌아오더라" 만이 박문수가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낙조토홍괘벽산(落照吐紅掛碧山) : 넘어가는 해는 붉은 빛을 토하면서 푸른 산에 걸렸는데, 한아척진백운간(寒鵝尺盡白雲間) : 찬 하늘 갈가마귀는 자로 재는 듯 흰구름 사이로 날아가네. 문진행객편응급(問津行客鞭應急) : 나루터를 묻는 나그네 말채찍은 빨라지고, 심사귀승장불한(尋寺歸僧杖不閑) : 절을 찾아 돌아오는 중의 지팡이는 한가하지 않구나. 방목원중우대영(放牧園中牛帶影) : 방목을 하는 들판에는 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고, 망부대상첩저환(望夫臺上妾低鬟) : 남편을 기다려 높은 누대 위에 서 있는 아내의 쪽그림자가 낮다. 창연고목계남로(蒼然古木溪南路) : 푸른 고목이 들어선 냇가 남쪽 길에는, 단발초동농적환(短髮草童弄笛還) : 단발한 초동이 피리를 불며 돌아오더라."

 장원급제 전설에 따라 입시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칠장사에 와서 합격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린다.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의 마음이야 더하고 덜함이 있을까? 나한전의 촛불은 오늘도 자신을 태우며 간절한 바람 하나를 부처님 전에 띄워 보낸다. 안성시에서는 얼마 전 칠장사 나한전 아래 합격 다리를 만들었다. 다리 앞에서는 어사 박문수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소개해 놓고 있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소소한 격려와 위로는 돼줄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가을꽃, 토요일, 스마트폰, 농촌, 식사’ 등이 시제로 주어졌고 용인시 초당고등학교의 김지영 학생이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시험은 반드시 낙방하는 자가 있어야만 합격하는 자도 있기 마련이다. 모두가 시험에 붙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했다면, 당락을 떠나 시험 자체가 인생의 좋은 경험이 됨은 분명하다. 설화를 바탕으로 백일장을 개최해 안성의 역사문화를 알리고, 청소년들의 호연지기와 문학적 감수성을 기르는 칠장사 어사 박문수 전국 백일장을 통해 많은 청소년들이 우리 안성시를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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