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아쉽고 사흘은 못 넘겨
상태바
하루는 아쉽고 사흘은 못 넘겨
신효성 소설가/기호일보 독자위원
  • 기호일보
  • 승인 2016.11.03
  • 11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효성 소설가기호일보 독자위원.jpg
▲ 신효성 소설가
소설 쓰는 여류 문인 모임에서 소이작도로 워크숍을 갔다. 써 온 소설 작품들을 합평하고 생각 많은 머리를 좀 쉬어가자고 해서 떠난 섬 나들이였다.

 인천 앞바다 섬들은 문인협회에서 자주 워크숍을 여는 장소라 친숙하기도 하고 한두 시간 안에 닿는 고립된 장소가 주는 결속으로 내적 치밀을 쌓기에도 적합해서 들뜬 마음이었다. 아침 일찍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만나 소이작도 행 여객선에 승선했다. 승객이 예상외로 적어서 한산하기는 했지만 늘 그랬듯이 우리는 우리끼리 진지하고 우리끼리 재미있어서 주변 분위기에 둔감했다. 자주 봐서 얼굴이 익은 여객전무님이 내일 배가 안 뜰 수도 있다고 귀띔을 했다. 그러면 하루 더 쉬다 오면 되지, 고민 없이 농담처럼 가볍게 응수했다.

 이미 내일 결항이 기정사실이 되었나 보다. 우리가 묵은 펜션의 주인아저씨가 단체손님 30명이 예약을 취소했다고 준비한 고기와 바비큐 음식 재료를 냉동고에 보관하면서 날씨 푸념을 했다. 상황 판단을 못하고 마냥 신이 난 우리가 천진해 보였는지 바람 심해지기 전에 산길을 걸어보라고 안내를 해 주었다.

 커피와 차를 준비해 한가로워 보이는 집들을 지나고 고추밭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섬은 고즈넉하게 가을로, 가을 속으로 깊어져 가고 있었다. 낮은 야산을 감아 도는 산길을 따라서 쉬엄쉬엄 산책하듯이 걷다가 쉬다가 바다도 내려다보면서 섬 분위기를 만끽했다. 자기 개성대로 만든 화관을 쓰고 숲길에서 사진도 찍고 마음에 드는 풍광을 보며 작품 구상도 했다. 몇 시간 산책으로 적당히 피곤이 몰려오고 시장하기도 해서 펜션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어두워지는 하늘과 바다에서 바람이 일었다. 깊어져 가는 소이작도의 밤은 바람 소리에 사람도 가축도 숨을 죽이고 있었다. 펜션 바로 밑 경사진 언덕배기 아래가 바다였다. 으르렁거리는 바람은 바닷물을 말아서 해안으로 들이치고 섬의 바닥을 훑으며 기세가 등등했다. 군마의 말발굽 소리가 밤새 유리창을 때리고 귓전을 강타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불편해서 문을 열고 테크로 나왔다. 세상천지 분간 없는 암흑이 포위한 곳에 바람소리만 웅장했다.

 "풍랑주의보로 인하여 선박운행이 통제되었습니다." 여객선 회사에서 승객에게 전송한 안내문자가 날아들었다. 속절없는 시간이 더디 가서 모두 일어나 앉았다. 만만하게 여길 세월이 아닌 인생을 살아 온 것 같은데 그날 밤의 바람소리는 처음 경험하는 어마어마한 거인의 포효였다. 왜 섬의 나무들은 줄기가 뒤틀리고 구부러진 팽나무가 많은가? 유추해 보건대 저 바람을 맞으며 생명을 이어온 인고의 진화였구나 하는 생각에 경외하는 마음이 들었다.

 선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았다. 바람맞이를 가자고 누가 제안을 했다. 어제 밤보다 좀 잦아진 듯한 바람인데도 나가서 맞은 외풍은 드셌다. 껴입고 머리에 쓰고 목에 두르고 단단히 준비를 하고 방파제 길을 따라 걸었다.

 예사롭지 않은 해풍에 몸이 흔들려 균형 잡기가 어려웠다. 바람 때문에 숨이 막히는 경험을 처음으로 했다. 방파제 끝에서 바람소리를 녹음하는 문우를 응원하며 오늘 이 장소에서 채집한 바람의 포효를 공유하기로 했다. 간신히 펜션으로 돌아왔다. 무모하고 대책 없어 보였는지 주인 부부가 두문불출 선고를 내렸다. 조금씩 무료해졌다. 진지한 몰입을 방해하는 바람소리를 피해보자고 틀어놓은 TV시청인데 감동이 없어서 시들해졌다. 도무지 이해 불가한 세상이다. 횡횡한 추측들이 난무하는 사건의 핵심에 푸른 기와집 사람들이 추종하는 인물이 활황의 주인공으로 거침이 없었다. 진격의 바람이 만든 요동치는 소용돌이에 갇혀서 무기력해지는 느낌이다. 강풍에 쓸려 높은 물결이 일면서 풍량특보로 불통이 된 섬에서 보낸 3일의 뒷날이 어지러웠다. 지어먹은 마음이 사흘을 못 간다 했다는데 3일 만에 뱃길 열린 소이작도의 선착장에서 우리를 태우려고 온 배가 더없이 반가웠다.


기호일보, KIHOILBO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