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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교수님, 긴급체포가 무엇인가요?" 갑자기 한 학생이 수업주제와 무관한 질문을 했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내용을 알려줬다. "긴급체포란, 중한 범죄혐의(현행범인 경우와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범죄혐의)가 있고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법관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을 여유가 없을 때 체포를 먼저 하고 사후에 영장을 발부받는 제도이다. 말하자면,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는 제도로서 사전영장주의에 대한 예외이다. 긴급체포를 한 경우에는 48시간 이내에 검사가 법관에게 영장을 청구해야 하고, 영장을 발부받지 못한 때에는 피의자를 즉시 석방해야 한다." 또 다른 학생의 질문이 이어졌다. "검찰은 왜 최순실을 입국하자마자 긴급체포하지 않았나요? 입국 이후 호텔에서 변호사들과 전략을 협의하고 은행을 돌아다니며 현금을 인출하도록 31시간 동안이나 맘대로 돌아다니게 방치하다가 체포한 것도 긴급체포인가요?" 말문이 딱 막혀 버렸다.

 요즘 국민들은 검찰의 수사태도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최순실 조사 과정을 영상녹화하지 않은 점, 최순실 모녀의 계좌를 압수·수색하지 않은 점, 최순실에 대해 뇌물죄가 아닌 직권남용죄를 적용하려 하는 점, 우병우 청와대 전 민정수석을 압수·수색 및 구속하지 않은 점, 사건이 드러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여론에 떠밀려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한 점,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절당하고 청와대가 건네준 의미 없는 자료만 들고 나온 점 등을 보면, 검찰의 수사 의지가 심히 의심되고 오히려 범죄자를 비호하고 감춰주려는 것으로 비쳐진다. 압수수색이나 긴급체포는 범죄혐의가 인지되자마자 조속히 전광석화처럼 이뤄져야 증거 확보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충분히 준 다음에 실시하는 압수수색과 긴급체포가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노골적인 늑장수사·봐주기수사에 대해 검찰을 향한 분노가 표출되기도 했다. 어떤 이는 지난달 31일 "시녀 검찰 해체하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개똥을 투척했고, 또 어떤 이는 지난 1일 포클레인을 몰고 대검찰청 정문으로 돌진했다. 더욱이 지난 7일에 우병우 전 수석이 팔짱을 끼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그 앞에서 쩔쩔매는 듯한 검찰 관계자들의 모습이 조선일보 사진으로 보도되면서 ‘황제소환’에 대한 국민적 공분(公憤)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우병우 전 수석은 서울대 법대 재학 중 20세의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TK(대구경북) 출신의 소위 ‘잘 나가는 검사’였다. 그런 그가 국정농단에 관여한 주요 인물로 수사를 받고 있으니, 국민들은 "공부 잘한 사람이 나라를 망쳤다",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으로 국민을 안하무인으로 본다"고 혹평하고 있다.

 흔히 검찰을 ‘공익의 대표자’라 부른다. 검찰청법 제4조 제1항에서도 검사를 ‘공익의 대표자’라고 지칭하고 있고, 제2항은 "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주어진 권한을 남용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국민들은 검찰을 ‘만악(萬惡)의 근원이자 소굴’이라고 지탄하고 있다.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만의 출세와 권력탐닉을 위한 사조직·범죄조직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광화문 촛불집회에 모였던 20만 시민들의 검찰에 대한 분노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에 대한 분노보다 실질적으로 훨씬 더 크다는 점을 검찰은 자각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에 가졌던 ‘검사와의 대화’를 기억한다. 국민들이 ‘대통령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없다’고 검사들을 비판하면서 ‘검사스럽다’라는 말까지 유행했다. 대통령 앞에서조차 오만하리 만큼 패기만만(?)했던 그 검사들이 오늘날 힘 있는 권력자에게는 한 없이 비굴하고 힘 없는 국민들에게는 한 없이 오만방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검사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이러려고 검사가 됐는지" 자괴감을 갖고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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