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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소설가
주말에 제주도 곶자왈 탐방을 다녀왔다. 곶자왈은 제주도 방언으로 숲이라는 뜻이다. 더 자세히 풀이하지면 ‘곶’은 숲이고, ‘자왈’은 바위나 자갈 같은 돌을 뜻하는 말이라 돌 위에 형성된 원시림이라 해야 정확하겠다. 제주의 숲은 무분별한 개발로 사라지고 지금 남아 있는 곶자왈은 겨우 6%뿐이라고 한다. 흙이 없는 이곳에서 초목은 제 방식대로 생을 일구며 존재하고 있었다. 나무의 뿌리는 땅속으로 뻗지를 못해 바위를 감싸고 버티며 근육을 키워 씨름선수의 장딴지처럼 다부져보였다. 화산이 분출하면서 점성이 높은 용암이 제각각의 크기로 쪼개져 굳어졌고 돌 층이 쌓여 형성된 요철지형은 돌이 포개진 틈 사이에 숨골을 만들었다. 숨골은 공기층을 품었다 풀었다 하면서 수분 조절과 온도 조절을 해주어 곶자왈에 시원한 여름과 따뜻한 겨울을 만들었다. 이 자연에 터를 잡은 식물들은 환경에 적응하며 군락을 이루어 나무와 덩굴식물과 양치식물과 이끼가 무성한 초록의 숲을 만들었다.

 세상의 숱한 갈등과 공존은 자연에서 시작됐다는 말이 실감나는 곳이 곶자왈이다. 햇빛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 광합성을 해야 생존하는 식물들은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다. 햇빛을 좋아하는 소나무는 키를 키우는데 주력을 했고 햇볕이 드는 쪽으로는 가지로 그늘을 만들지 않는 지혜를 발휘했다. 구지뽕나무는 키 큰 나무에 햇빛이 가려지면 위기감지 능력을 작동해서 가지 중 하나가 키 큰 나무의 줄기를 타고 덩굴식물마냥 하늘로 뻗어 올라갔다. 아래를 향해 돋아나 침입해 들어오는 적을 방어했던 억센 가시마저도 덩굴가지에는 가지를 키우는데 온전히 힘을 쓰기 위해 가시를 만들지 않는 전략이 놀라웠다. 현대사회에서 사람 관계에 가장 큰 스트레스인 갈등의 어원도 재미있다. 갈등의 갈(葛)은 칡을 의미하고 등(藤)은 등나무를 말한다. 칡은 숲 속에서 비집고 들어갈 틈만 보이면 순식간에 자리를 잡아 이웃한 나무줄기를 감고 감아 순식간에 꼭대기로 올라간다. 햇빛을 독점할 욕심으로 큰 잎을 가득 펼쳐서 아래쪽 식물에게는 한 줌의 햇빛도 들어가지 못하게 차단해 버린다. 숙주가 된 나무는 버티지 못하고 몇 년이 안 가서 죽어버린다. 칡이 큰 나무를 고사시켜 쓰러뜨린 틈으로 광합성 수혜를 입은 식물 중에 등나무가 있다면 역전극이 펼쳐진다. 칡은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식물이고 등나무는 왼쪽 방향으로 감아 올라가는 식물이라서 등나무가 칡덩굴을 누르고 감아 올라가면 밑에 깔린 칡덩굴은 꽉 조여지고 햇빛도 차단당해 결국 죽고 만다. 갈등은 서로 상대를 감고 올라가는 덩굴이라서 네 탓을 하며 이해관계에 따라 불화를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사람과의 얽힌 관계가 칡과 등나무 같이 서로 얽혀 풀어내기가 힘들어진 상황을 사람들은 갈등이라고 했다. 햇빛을 독점하면 차단당한 쪽은 고사한다. 그러면 같이 쓰러지거나 빈틈으로 새로운 세력이 왕성하게 성장해 위협을 당한다. 공존의 교훈으로 손잡고 가자는 말도 되고 세상의 모든 전성기는 결국 쇠락하기 마련이니 겸손을 가르치는 교육이 되기도 한다.

 숲 속 갈림길에 잘 생긴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중간 몸통이 끊어진 덩굴나무가 나무줄기에 매달려 살고 있었다. 관리인은 잘 생긴 이 나무를 더 잘 가꾸고 싶어서 나무를 감고 자라는 덩굴나무의 가지를 잘랐다고 한다. 덩굴나무 가지가 죽자 나무의 줄기에 몸을 붙이고 소복하게 살아가던 콩짜개덩굴도 죽어버렸다고 한다. 콩짜개덩굴은 잎 모양이 콩을 반으로 갈라놓은 모양이라고 해서 재미있는 이름을 가지게 된 식물이다. 콩짜개덩굴의 푸른 잎이 나무줄기를 덮어서 수분을 공급해주고 바람과 추위를 막아주었는데 동거하던 덩굴나무 줄기가 없어지니 콩짜개덩굴도 살 수가 없어진 것이다. 강한 해풍에 나무의 몸통은 건조해지고 포근히 감싸주던 콩짜개덩굴도 사라진 나무가 시름시름 앓았는데 다행이도 잘려진 덩굴나무의 아랫 부분에서 새순이 자라나와 위쪽의 덩굴나무와 연리지가 돼 덩굴나무가 살아났다고 한다. 지금 우리 세상은 껄끄럽고 부끄럽다. 원칙과 배려를 함께 나눌 줄 아는 숲의 행성 나비족의 세상이 부러워지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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