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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검찰이 지난 20일 박근혜 대통령을 ‘미르·K스포츠재단 불법 설립·모금’, ‘청와대 문건 유출’ 등을 공모한 피의자로 입건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재직 시절 범죄 혐의와 관련해 형사 입건된 것이다. 청와대는 "수사팀 발표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객관적인 증거를 무시한 채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서 지은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도 "검찰의 직접조사에는 일절 응하지 않고 중립적인 특검의 수사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최고 수장인 대통령이 정부에 속한 수사기관의 수사결과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철저한 ‘자기부정’과 ‘모순’이 아닌가. 대통령이 수사기관의 공정성을 부정하면서 수사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반 국민들도 수사기관의 공정성을 부정하면서 수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참 답답한 느낌이 가슴을 억누른다.

 지난 5일, 12일, 19일에 연이어 수십만 내지 100만 명이 넘는 분노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며 촛불시위에 참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친박계 인사들은 국민들의 요구를 외면하면서 "대통령이 퇴진하면 헌정이 파괴·중단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허위·과장된 말이다. 왜냐하면, 민주공화국이자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의 헌정질서가 자연인인 대통령 한 사람의 퇴진에 의해 파괴·중단되는 것은 아니며, 헌법은 대통령이 궐위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하도록 규정하고(제68조 제2항),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하도록 규정하고(제71조) 있기 때문이다. 사안이 이러함에도 국민들의 요구를 계속해서 외면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더욱이 작금에 벌어지는 몇 가지 실태들을 보면 너무나 기가 막히다. 국민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한 일, 검찰 조사 거부에 이어 국회추천 총리도 거부하겠다고 시사한 일, 네포티즘(Nepotism : 연고주의)적인 ‘끼리끼리’식 지연(地緣) 위주 인사를 시행한 일(IBK자산운용 대표로 TK(대구경북) 출신 인사를 임명하고(은행장이 1순위와 2순위로 추천한 자를 ‘둘 다 호남 출신이라 부적절하다’고 배제했다고 한다), 한국전력 발전자회사 3개사 사장도 모두 대구 출신을 임명했다), 대통령 자신은 검찰의 조사를 회피하면서 엘시티 사건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일 등을 보면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인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옛날 왕정시대에도 ‘민(民)’을 중히 여기라 했다. 맹자(孟子)는 "인민이 가장 귀하고, 국가가 그 다음이고, 군주는 가장 경하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라고 했고, 순자(荀子)는 "하늘이 백성을 낳은 것은 임금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하늘이 임금을 세운 것은 백성을 위한 것이다(天之生民, 非爲君也, 天之立君, 以爲民也)"라고 했다. 한편,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또한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君舟人水, 水能載舟, 亦能覆舟)"란 말도 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가슴에 깊이 새겨두어야 할 금언이다.

 자고로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이라 했다. 그리고 하늘의 뜻에 따르는 자(順天者)는 흥(興)하고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자(逆天者)는 망(亡)한다는 옛말도 있다. 박 대통령은 애국하는 마음으로 헌정문란의 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퇴진의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의 95%로부터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정권 유지의 정당성은 이미 소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한광옥 비서실장과 비서진 등은 국민들의 요구사항을 진솔되게 전달함으로써 후회 없는 선택을 하도록 충실하게 대통령을 보좌해야 할 것이다. 청와대 참모진은 국가·국민을 위해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이지 대통령의 사복(私僕)이 아니다. 무릇 ‘법적인 죄인’이 되는 것보다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이 더 두렵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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