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평생의 반려자가 될 사람과 함께 그의 친구들을 만나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진지한 이야기들을 한참 동안 나누고 자리를 일어설 무렵 한 친구가 "우리 더치페이 하자"며 계산서를 들고 참석한 인원수를 세기 시작했다. 평소 지인들과 식사를 할 일이 생기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식사 계산을 해오던 것이 익숙했던 내겐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최근엔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식사비용을 각자 내는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다는 뉴스를 접하기도 했다. 비용을 각자 부담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인 더치페이는 ‘더치 트리트(Dutch treat)’에서 유래한 말이다. 더치(Dutch)란 ‘네덜란드의’ 또는 ‘네덜란드 사람’을, 트리트(treat)는 ‘한턱내기’ 또는 ‘대접’을 뜻한다.

 더치 트리트는 다른 사람에게 한턱을 내거나 대접하는 네덜란드인의 관습이었다. 1602년 네덜란드는 아시아 지역에 대한 식민지경영과 무역 등을 위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영국과의 식민지 경쟁에 나섰다. 그러나 17세기 후반 3차례에 걸친 영국과 네델란드의 전쟁을 계기로 네덜란드의 제해권은 점차 영국으로 넘어갔고 이러한 가운데 영국인들의 일에 네덜란드인들이 간섭하게 돼 네덜란드와 영국 두 나라는 서로 갈등이 이어졌다. 이에 영국인들이 네덜란드인(Dutchman)을 탓하기 시작하면서 ‘더치(Dutch)’라는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게 됐다. 이후 영국인들은 ‘대접하다’라는 의미의 ‘트리트(treat)’ 대신 ‘지불하다’라는 뜻의 ‘페이(pay)’로 바꾸어 사용했고, 이후 ‘더치페이’라는 말은 함께 식사를 한 뒤 자기가 먹은 음식에 대한 비용을 각자 부담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됐다고 한다. 둘이서 식사를 하고 난 뒤 각자 계산은 왠지 모르게 정이 없어 보이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있을 때 식사비용이 부담이 될 경우에는 합리적인 계산법 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화가 우스갯소리로 해오던 회사 부서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계산이 두려워 구두끈을 고쳐 묶는 다던지, 화장실을 갔다가 늦게 나오는 그런 직장 상사의 모습이 사라지게 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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