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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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 말인가
신효성 소설가/기호일보 독자위원
  • 기호일보
  • 승인 2016.11.29
  •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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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소설가
입동(立冬) 지나 소설(小雪) 지나 바람이 차다. 잎 떨어뜨린 감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빈 가지인 채 휴면으로 겨울을 나야 하는 시절에 여태 매달린 감들은 선홍빛이다. 시린 하늘이 배경이라 문득 서럽다.

 겨울을 이겨내는 인내는 삼라만상이 공통이라 해도 붙박이 식물에겐 고되다. 약한 부분을 고사시켜 잎을 잘라냈지만 다음 해에 생장해야 하는 눈은 두꺼운 비늘 조각으로 품어서 혹한에 대비한다. 땅 위로 찰랑했던 잎과 줄기를 고사시켜도 씨를 남기고 땅속줄기도 알뿌리도 투박한 생명을 잉태해 입춘을 기다린다.

 너를 모르는데 나를 엮지 말라고 말놀이가 풍성하다. 씨앗을 털었고 알뿌리도 캐내어 기계충 먹은 사내아이 머리통처럼 듬성듬성 고사한 들녘이 보인다. 황폐해진 토질을 다시 가꾸려면 노동력도 거름도 더 많이 필요할 테지만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기온은 영하로 떨어지고 광장의 바람은 더 매서워져도 잡은 손으로 온기를 나누며 씩씩할 것이다. 시절을 극복하는 대견한 힘이다.

 서러운 시집살이를 풀어놓는 할머니 눈가가 짓물러 있다. 뒤뜰 굴뚝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많이도 울었다고 했다. 한 세대쯤은 건너뛴 이야기라 듣는 흥은 없어도 할머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추임새 과하지 않게 진지하게 들어줘 고맙다고 했다. 눈에 총기가 살아나면 할머니는 파노라마로 흘러가는 지난 세월을 잠깐씩 붙잡았다.

 스물에 과부돼 친정으로 들어온 전처소생 딸과 그 딸의 딸까지 시중 들었다 한다. 혼례를 치르기는 했으나 몸져누운 지 오래된, 아버지보다 더 나이 먹은 남편과는 동침조차 해 본 적이 없어서 생각시로 살았다는 자조가 예스럽다.

 청상과부 딸은 섬섬옥수 고운 미모라 섬겨야 될 것 같았다. 엄연한 어미임에도 어미됨을 누리지 못하고 행랑어멈으로 자의로 타의로 내려앉았다. 후견인 없는 집에서 고달픈 세월이 더디 흘렀다.

 싱거미싱 한 대를 혼인선물로 받았다는 할머니는 솜씨가 좋았다. 싱거미싱을 돌려서 의복이며 침구며 상시 준비를 했고, 부엌살림도 빼어나 상전과 다를 바 없던 가족들은 삼시세끼 호강한 밥상을 받았다. 병석의 남편과 과부 딸의 지밀(至密)상궁으로, 침방(針房), 수방(繡房 )까지 깔끔하게 정돈하는 부지런으로 평생이 고달팠던 할머니는 노년에 잠깐 대접을 받았다. 치매로 정신을 놓으면서 어린 생각시로 돌아간 할머니는 자원봉사자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할머니 육신의 고단함을 담보로 호의호식했던 이들은 쓸모없어진 할머니의 노구가 귀찮았다. 돌봐줄 손길이 없던 할머니는 시설에 입소했다. 내쳐진 야속함을 가슴에 묻어두고 할머니는 서러운 기억을 지워 나갔다. 꽃 같았던 할머니의 예전이 비어진 기억의 칸에 문득문득 돌아왔다. 주름진 교태조차 아름다워 자원봉사자 눈을 젖게 했던 할머니다. 할머니가 짰을 생 저쪽의 고운 무늬가 보였다. 할머니의 생은 스스로 빛이 났고 아름다워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견뎌낸 할머니의 생은 보통 사람보다 더 야박했지만 소설 습작을 하는 할머니의 딸의 딸, 그 딸의 핏줄이 세상 속으로 할머니를 모셔왔다. 꽃가마 타고 환생한 할머니는 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세상의 환대를 받았다.

 초등학교 때 ‘감’이란 제목으로 시를 쓴 적이 있다. 앙상한 가지에 달린 선홍의 감이 멀리서 보면 꽃송이 같아서 겨울에 만개한 꽃이라고 썼다. 매달린 감에 햇살이 비치면 반짝이는 선홍의 붉은빛이 앙상한 가지에 가득 불을 켰다. 그러면 주변이 환하게 밝았다.

 그렇다. 포토존이 몹시 성가신 뉘 말은 세상에 겨울을 만들지만 떼창이 불러낸 뉘 말은 우리의 심장을 데워서 북풍한설에도 꽃을 피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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