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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홍 갯벌문학회장·인천시 계양구 민원여권과장
지인으로부터 ‘창작의 자세’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필자의 대답은 한마디였다. ‘삼라만상을 거꾸로 보고 써라’였다. 그렇다고 세상을 삐딱하게 보라는 의미는 아니다. 나를 감싸고 있는 주변의 모든 것들은 빽빽한 법규와 질서, 그리고 관습의 너울로 울타리 되어 있다. 그래서 웅크릴 뿐 활공(滑空)할 수는 없다. 창작이란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작업인데,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는 작업이라면 새롭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현재의 질서를 상상력으로 허무는 작업이 곧 창작의 길이다. 육신의 자유는 속박되어 있더라도 정신의 자유는 상상력의 날개를 타고 얼마든지 활공할 수 있다.

 유목민(遊牧民)을 뜻하는 단어로 노마드(nomad)가 있다. 세계의 절반을 정복했던 몽골의 칭기즈칸이 바로 유목민이요, 노마드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들은 정처 없이 초원을 떠도는 유랑생활에서 탈피하고, 안정적인 농경지를 확보하고자 쉼 없이 정벌을 단행했다. 노마드의 정신은 개척과 변화, 창조적인 행위를 일컫는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안정적인 기반을 다지고자 한 칭기즈칸의 장정(長征)이 노마드의 꽃을 피웠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그의 역저「차이와 반복(1968)」에서 노마드의 세계를 ‘시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로 설파했는데, 이후 노마디즘(Nomadism)은 현대 철학의 한 개념으로 주목 받게 됐다. 노마드의 정의는 어떤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하고,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일컫는다. 이야말로 새로운 문화적 트렌드로서 문학창작의 키도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고정관념의 틀에서 탈피하기 위해 자신의 정신과 생각을 자유스럽게 해방시켜 줘야 한다. 그러려면 활기찬 발상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필자가 지인에게 창작을 하려면 ‘삼라만상을 거꾸로 보고 써라’고 대답한 것은 바로 들뢰즈가 말한 노마드, 곧 ‘시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만일 시를 쓴다면 기존의 고정관념을 걷어버리고, 엉뚱하면서도 낯선 풍경의 필체가 나오도록 하는 창작정신이 필요할 것이다. 필자의 졸시 「소래포구의 아침」은 첫 행을 이렇게 썼다. ‘소래포구는 등짝 푸른 갈치다’. 2002년 공무원문예대전 수상작으로 뽑힌 심사평에 의하면 은유(隱喩. metaphor)의 수월함을 적시했었다. 자화자찬 같아서 면구스럽지만, 2010년 제4회 해양문학상에 당선한 졸시「출항기」의 첫 연도 다소 생뚱스러운 은유와 비유법으로 시 맛을 살렸다는 문단의 평을 들었다. ‘그러니까 출항은/ 이제 막 씻김굿을 털어낸 갈망 따위들이/ 그악한 노스텔쟈 침향을 입술에 바르고/ 해신(海神)에게 내미는 첫 키스다’. 문학창작에 입문하려는 이들에게 권한다. 틀에 박힌 고식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만 창작의 신열에 빠질 수 있다.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이미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 이름 할 수 있는 이름은 이미 이름이 아니다(名可名非常名)"라고 말했다. 참으로 창작의 기본태도에 대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기존의 콘크리트 질서 위에서는 창조와 혁신이 웅변할 자리가 협소하다. 그래서 창작의 세계는 담장 없는 자유를 향해 타오르는 횃불과도 같은 것이다.

 13세기 세계지도를 몽골깃발로 수놓았던 유목민들은 1~2개월 걸리는 거리를 기막힌 기마병으로 순식간에 돌파해 정복된 국가들을 경악하게 했고, 신속한 의사 결정 시스템으로 백전백승했다. 노마드 정신은 이런 상식을 뒤엎는 전술적인 독창성 위에 나래를 편다. 좋은 작품을 창작하려면 기존에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부수고, 자아와 사물의 고정적인 이미지를 지워버려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상상력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참신한 상상력은 구애받지 않는 정신에서 나오고, 이것이야말로 문학창작의 원천이 된다. 유목민의 신화 칭기즈칸과 같은 독창성과 신속성으로 무장한 노마드 정신(nomad spirit)이야말로, 문학창작의 기폭제가 된다는 믿음으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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