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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현린 주필(主筆)
썩은 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할 수 없다 했다. 그렇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망가졌을 줄이야. 차라리 전쟁과 지진에 의해 무너지고 깨어진 것이라면 모두가 나서 재건이라도 서두를 수 있으련만.

 작금에 드러나는 현 정부의 부패와 무능은 일찍이 겪어보지 못했던 추잡하고 더러운 작태들이었기에 필설로 표현하기조차 꺼려진다. 곡학아세(曲學阿世)하던 나라의 벼슬아치들은 저지른 갖가지 비리가 드러나 줄줄이 감옥으로 들어가고 있다. 목도하고 있는 상황을 쓰고 그리려니 지필묵까지 더럽히는 것 같아 붓이 나아가질 않는다.

 정치인들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신성한 상아탑의 대학교수조차 스승의 길을 가지 않고, 의사가 인술을 펴지 않고 사도(邪道)를 택하니 나라꼴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믿고 바랄 곳이 없다. ‘신뢰의 원칙’이 있다. 자공(子貢)이 정치에 대해 물으니 공자(孔子)가 말했다. "식량을 풍부하게 하고(足食), 군비를 넉넉히 하여(足兵), 백성이 통치자를 믿게 해야 한다(民信)"라고 답했다. 자공이 또 물었다. "부득이한 일로 하나를 버려야 할 경우에는 세 가지 가운데 어떤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는 "군비를 버려라(去兵)"라고 답했다. 자공이 또 묻기를 "부득이한 경우가 생겨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두 가지 가운데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식량을 버려라(去食), 자고로 사람에게는 죽음이 있거니와(自古皆有死) 백성들은 믿음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民無信不立)"라고 말했다.

 그렇다. 신뢰를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 최근 일련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국민 주권을 거론하고 있다. 툭하면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제1조 2항의 조문을 인용하곤 한다. 주권과 국민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다. 국민주권에 대한 모독이다.

 진작에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했어야지 이제 다 망가트리고 나서 무슨 낯으로 또다시 국민주권을 운운하는지 국민들은 분통이 터진다.

 ‘이게 나라냐’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인데도 여야 정치권은 국가 장래를 걱정하기보다는 차기 집권에 몰입하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의 삶을 아랑곳하지 않는 정치권에 국민들의 실망감은 더해 가고 있다.

 구국(救國)이 그들의 잣대가 아니다. 정치인의 일거수일투족은 오로지 차기 대권(大權) 쟁탈전에서의 유불리만을 따지며 수 싸움 기 싸움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이 같은 복잡한 계산들이 정치권 저변에 깔려 있기에 난국 수습의 행보가 더디다.

 외신들조차도 한국의 현 상황을 한심한 듯 바라보면서 한국의 정치상황을 비평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한국 대통령은 나라를 최우선으로 여겨야 한다(South Korea’s president must put the nation first)’라는 사설을 게재 하기도 했다.

 한 세기 전 영국의 작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Bishop, Isabella Bird)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에 이어 또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국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또 한 번 조선의 치부가 외국인의 눈에 비친 것이다.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사건을 처리, 청관(淸官)으로 이름을 남긴 송나라 판관 포증 포청천의 출현을 갈구하고 있는 우리다. 도시락 검찰로 불리며 어떠한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일본 동경지검 특수부 검사를 부러워하고 있는 우리다.

 우여곡절 끝에 임명된 박영수 특검이다. 박 특검은 "오로지 사실만 바라보고 수사하겠다. 법과 원칙을 철저히 지켜 수사하겠다"라는 표현으로 특검에 임하는 각오와 자세를 밝혔다.

 국민들의 특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역사가 굽어보고 있고 국민들이 바라보고 있다. 모쪼록 이번 특검은 처음의 각오대로 좌고우면 (左顧右眄)하지 말고, 법과 원칙에 따라 똑바로 국민만을 바라보며 무소의 뿔처럼 특검의 길을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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