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여러 회사 업무를 돈 받고 처리하는 사람을 프리랜서(freelancer)라고 한다. 원래 프리랜서는 중세기의 용병 기사단을 뜻했다. 유럽 중세기 후반에는 전쟁터마다 쫓아다니며 돈 받고 싸워주는 용병이 많았다. 주로 백년전쟁에 참전했다가 군비 부담으로 부도가 난 기사들이 전쟁 후 집에 가지 못하고 용병으로 유럽을 떠돌았다. 용병은 창으로 적진을 부수는 숙련된 기사 한 명을 중심으로 활도 지원 사격을 해줄 궁수, 말과 갑옷을 유지 보수하는 인력을 포함해 6~9명이 한 팀이었다. 이런 식으로 팀이 이뤄져야 기사로 대표되는 ‘창 한 자루’의 전투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한 팀을 창 즉 ‘lance’라고 불렀다. 중세기 용병은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러던 중 19세기 말에 갑자기 중세기 기사가 등장하는 낭만주의 소설이 인기를 모으면서 중세기 붐이 일어났다. 스코틀랜드의 문호 윌터 스콧의 소설 「아이반호」에 중세 용병이 등장하는데 윌터 스콧은 이들에게 멋진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중세기에는 기사가 왕을 찾아가 자기의 조직을 상징하는 창(lance)을 그 국가만을 위해 쓴다는 서약식을 했는데 윌터 스콧은 이런 의식을 용병은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창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해서 ‘free lancers’라고 불렀다. 1900년대 문인은 기자가 아니면서 신문사에 글을 기고해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아이반호에서 나온 단어를 응용해서 스스로를 프리랜서라고 부르다가 오늘날 모든 자유 직업인을 지칭하는 의미로 확장됐다.

지난주 오랜만에 현직을 떠난 선배들과 현직 후배들이 한자리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 중 한 선배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며 이야기의 포문을 열었다. 그 선배가 새롭게 시작하려는 일은 기업체나 기관의 홍보를 대행하는 업무이다. 물론 업무 수주를 위해 사업자 등록을 했지만 본인은 프리랜서라며 특유의 털털한 웃음과 함께 후배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그 선배의 이야기를 듣던 중 선배의 모습이 전쟁을 앞둔 중세시대의 기사로 오버랩되면서 술잔을 기울이다 그만 웃음이 절로 나왔다. 중세시대 기사들이 영광을 위해 광활한 벌판으로 전진하듯 중년의 나이에 새롭게 시작하는 선배의 앞날에도 영광이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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