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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운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척박한 환경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공동체의 따뜻함과 무욕(無慾)의 지혜를 가진 제주 해녀 ‘바다의 어멍’. 바다에서 평생 자식을 키우고 남편의 뒷바라지, 삶의 고단함을 살았던 제주 해녀가 이달 초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제주 해녀의 삶은 한국 어머니들의 전형적인 삶과 다를 바 없다. 자식을 위해 무조건적 사랑과 희생, 묵묵히 삶의 무게를 바다와 생활하면서 이겨낸 인생극장이다.

 제주 해녀에게 삶의 소리는 ‘숨비’이다. 어머니의 숨비 소리, 물속에서 숨을 참은 채 작업을 하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수면 위로 올라와 내쉬는 생명의 소리이다. 이와 반대로 ‘물숨’은 사람의 숨이 아닌 물의 숨, 바로 죽음의 숨이다. 해녀들이 물속에서 ‘좋은 물건’을 발견했을 때 내는 마음의 숨인 물숨은 그 숨을 내쉬지 못하고 삼키는 순간, 곧 죽음에 이른다. 욕망에 사로잡히는 순간 바다가 무덤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녀들은 딸에게 맨 먼저 물숨을 피하는 방법, 즉 욕심을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한다. ‘눈이 욕심이다’며 욕심을 내지 말고 숨만큼만 따도록 하는 삶의 지혜를 알려 줬던 것이다. 이것이 제주 해녀들의 첫 번째 삶의 지혜이다. 두 번째, 제주 해녀에게는 배려와 공존의 미덕이 있다. 제주도 해녀들은 ‘개석’이라는 전통에 따라 해산물을 많이 따지 못한 어린 해녀나 할머니들의 망사리에 그들이 목숨을 걸고 채취한 해산물을 한 움큼씩 나눠 주기도 한다.

 제주 해녀의 뛰어난 물질 기술 뒤에는 질긴 생명력과 모성애가 숨어 있다. 숨은 제주 해녀들의 계급을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했다, 숨을 참는 능력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뉘며 하군은 얕은 바다, 상군은 2분 정도의 숨을 참고 10-16m까지 잠수하는 능력을 가진다. 상군은 절대로 하군의 바다에 들어가지 않는다. 공생의 나눔으로 같이 사는 지혜가 보인다. 또한 배려와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 역할을 하는 불턱의 공동마당이 있다. 바다에서 나온 후 몸을 말리는 모닥불 불턱에도 상군 불턱, 중군 불턱, 하군 불턱이 있다. 하지만 불턱에서는 어린 해녀부터 할머니 해녀까지, 집안의 대소사나 집안일, 물질의 지혜까지 나누는 이야기 공동체 공간이다. 이러한 연유에서 우리나라의 19번째 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된 것이다.

 해녀의 삶은 고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해녀는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쓰는 직업이라고 할 만큼 고된 일이다. 또한 제주도 속담에는 여자로 태어나느니 소로 태어나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제주도 속담처럼 물질은 제주도 여성의 숙명이었다. 해녀가 바다에 들어가 숨을 멈춘 대가는 이승의 밥이 됐고, 남편들의 술이 됐고, 아이들의 공책과 연필이 됐다.

 세 번째, 제주 해녀는 오랜 역사와 항일 운동의 기록을 보인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해녀의 존재는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는 진주를 캤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 고문서에 잠녀(潛女)로 기록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항일운동도 했다. 제주도 해녀는 철저히 여성문화다. 과거엔 남성도 물질에 참여했지만, 조선 조정의 과도한 수산물 진상(進上) 요구를 견디다 못해 차츰 사라지고, 물질 기술에 따라 상·중·하군으로 위계질서가 나뉘는 잠녀회가 자리 잡았고, 그것은 공생의 삶으로 나타났으며 1930년대에는 일본의 식민지 경제수탈에 항의해 해녀항일운동도 펼치기도 했다. 이러한 제주 해녀 문화가 지역의 독특한 문화정체성, 자연친화적 방법, 공동체를 통해서 관련된 지식과 기술이 전달된다는 점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하지만 제주 해녀의 수가 감소하고 있고 대다수가 60대 이상이라는 것이 문제점이다. 문화유산 등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문화유산의 상태 유지이며, 문화유산인 제주 해녀의 독특한 문화 정체성과 공동체 삶의 지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모아져야 한다. ‘호이 호이 훠~’ 하고 숨을 몰아쉬며 살아온 제주 해녀의 문화는 대한민국이 이어 갈 훌륭한 문화유산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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