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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지난 15일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은 국정조사특위 4차 청문회에서 박근혜 정권이 양승태 대법원장과 판사들을 사찰했다는 의혹을 폭로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은 이러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는 ‘3권분립을 유린한 폭거’이며 ‘중대한 반헌법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16일 오전 기자들에게 "어제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주장한 청와대의 사찰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며 "청와대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사찰한 적이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부인했다. 그런데 한 청와대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조한규 전 사장이 폭로한 내용은 ‘동향 보고 수준’의 문건인데 본질에서 벗어나 사찰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러자 야당에서는 ‘동향 보고 수준’이라고 말한 것은 "사찰행위였음을 스스로 실토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대한변협에서도 "사찰 의혹이 사실이라면 박근혜 정권이 사법부까지 장악하려 했던 중대한 헌정문란 행위가 아닐 수 없다"며 특검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처럼 수사 촉구 여론이 일자 특검에서도 수사 가능성을 거론했다고 한다.

 ‘사찰’이란 통상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몰래 살피는 일을 의미하는데, 특히나 우리 국민들은 ‘치가 떨리는’ 기억을 갖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밀정과 앞잡이들이 독립지사들을, 군사정부 시절에는 정보기관원과 경찰이 민주화운동에 나선 인사들을 사찰했다. 감시와 미행은 기본이고, 불법도청도 다반사로 일삼았으며, 부모형제 등 가족과의 연락조차도 자유롭지 못했다.

 학자들은 우리 헌법에 규정된 ‘민주적 기본질서’의 내용으로 헌법상의 기본권의 존중(특히 생명과 그 자유로운 발현을 위한 인격권의 존중), 국민주권, 권력분립, 정부의 책임성, 법치주의, 사법권의 독립, 복수정당제,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생존권의 존중, 평화의 보장 등이 포함된다고 본다. 이 중 특히 ‘사법권의 독립’은 입헌민주주의 법치국가 구조의 초석이며, 시민적 법치 국가의 중요한 징표이다. 사법권의 독립은 사법부의 입법부·행정부로부터의 독립, 법관 지위의 독립과 신분보장, 법관의 재판상의 독립으로 구성된다. 우리 헌법은 제101조 제1항에서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해 사법부의 독립을 규정하고, 제103조에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해 물적(物的) 독립 내지는 재판상의 독립을 규정하고, 제106조에서 법관의 신분보장을 규정하고 있다.

 과거 유신시절에 시국사건 재판이 열릴 때에는 방청석에서 정보기관원이 판사의 언행을 감시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대학생들이 술자리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신고에 의해 경찰에 끌려가는 사례도 흔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면서 부부사이에도 때때로 목소리를 낮춰 얘기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근거가 불확실한 유언비어가 ‘유비통신(流蜚通信)’이란 이름으로 횡행하기도 했다. 끔찍했던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온 건가.

 법원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최후의 보루’이다. 따라서 정부가 법관들을 사찰했다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민주국가임을 스스로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더욱이 대법원장까지도 사찰을 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사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는가. 정치인, 언론인, 학자, 종교인, 헌법재판소 재판관, 검찰 간부 등 거의 모든 사람이 사찰의 대상일 것이다. 왜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부에 의해 감시당해야 하나. 국민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왜 막는가.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 건가.

 국민의 기본권을 충실히 보장하기 위해 판사들도 자신들의 기본권을 스스로 지키는 데 노력해야 한다. 판사들이 ‘사법권 독립’과 ‘판결의 자유’를 외치며 촛불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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