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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소설가
메멘토 모리의 뜻은 ‘죽음을 기억하라’다. 모든 끝은 죽음인가. 들뜬 성탄 주말을 마무리할 늦은 심야시간에 KBS방송에서 하는 다큐 ‘죽음’을 시청했다. 예수의 탄생과 부활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계절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매해 빠지지 않고 캐럴 송 흥겨운 대형 쇼핑몰을 다녀오게 된다. 올해는 난해한 시국으로 가라앉은 성탄절과 송년이라 해도 대형 트리는 빛나는 장식 전등과 크리스마스 용품으로 꾸며져 휘황하고 아름다웠다. 사람에 치이고 선물을 고르느라고 지치고 이런 성가신 일들을 해마다 반복하는 일에 피곤해졌다. 아이와 어른들로 부산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자리를 옮겨 찻집에 들렀다. 찻집도 만원이다.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선물을 고르는 시간만큼은 정성을 전달할 그 누구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늦은 귀가를 해서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아 TV를 켰다. 다큐 ‘죽음’의 배경 장소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병동이다.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한 병원에 수녀님들이 호스피스 병동의 봉사자로 죽음의 길을 걷는 환자들을 위로한다. 생명을 마무리하는 말기 암 환자들에게 숭고한 죽음은 현실에서 쉽지 않다. 환우들 멘토 역할을 하는 말기 암 환자인 젊은 의사도,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살고 싶다는 어린 남매를 둔 엄마도, 거칠 것 없이 홀가분하지만 좀 더 살고 싶다는 노년의 할머니도, 그 누구도 삶을 마무리하는 일은 단순하지 않다. 인터뷰한 수녀님이 한 말이 가슴에 새겨진다. "막 살아서는 잘 죽을 수 없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는 말이다. 가슴에 쿵, 충격이 온다. 적지 않을 세월을 살았으니 세상의 이치를 짐작할 수 있는 나이를 먹어서일 것이다.

또 다른 노년의 수녀님께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고 한 말도 깊이 새겨진다. 죽음은 제2의 출발이기에 저쪽 세상으로 길 나서는 망자에게도 남겨진 사람에게도 똑같이 목이 메고 애절하다. "엄마, 아빠 얼굴이 깨끗해. 너무 환해졌어. 엄마." 말기 암 환자인 아빠의 초췌해진 얼굴을 보아 온 아이가 숨을 거둔 아빠의 얼굴이 환해졌다고 오열하는 엄마에게 알린다. 아빠는 사랑하는 가족의 애틋한 사랑을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감각기관인 귀를 통해서 듣고는 평온하게 숨을 거둔다. 천국에서는 고통 없이 행복하라는 아내의 소망을, 아빠 사랑으로 훌륭한 어른이 되겠다는 어린 아들의 다짐을 들으면서 임종하는 아빠는 얼굴이 환해지고 평온해 보인다. 다큐는 운명한 환자들의 장례와 장지까지 개별 편집을 해서 보여줬다. 가슴 먹먹해지는 한 장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대학병원 레지던트와 간호사로 만나 가정을 이룬 젊은 부부의 화면이다. "레지던트가 되면 과도한 업무에 치여서 까칠한 성격의 의사가 많은데 그이는 착하고 순동이었어요. 성심으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통해서 연애를 시작했어요." 간호사인 아내는 여러 죽음을 목도하고 심각한 환자를 보아온 만큼 남편 앞에서 의연함을 지키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화장장에서 남편의 관을 화구 안으로 밀어 넣자 창문을 통해 지켜보던 아내가 소리를 지르며 오열했다. "여보, 불났어. 어떻게 해. 여보, 불났다니까 빨리 나와 빨리 나오라고."

 오열하며 몸부림치는 아내를 주변 사람들이 부축해 보지만 아내는 불났다고 빨리 그곳에서 빠져나오라며 울부짖었다. 소파에 앉아있던 나도 바닥으로 내려앉아서 펑펑 울었다. 죽음 앞에서 눈물바람이 아닌 가족 친구 친척이 없지만 젊은 엄마의 눈빛은 지워지지가 않는다.

 크리스마스는 시간대가 이미 지났고 눈물범벅으로 잠 못 드는 밤을 서성이며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졌다. 유한해서 애틋한 생명은 누구에게나 따지고 보면 시한부다. 만족이 안돼서 서운해서 원망하고 질책했던 가족 지인 주변 모든 사람들이 지금 같이 있어줘서 감사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삶도 세상도 겸허하게 품고 한 해를 마무리 할 충분한 이유를 되새겨준 12월 끝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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