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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어느 사람이 나무를 깎아 만든 그릇을 팔면서 살았습니다. 생활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분의 얼굴에는 늘 행복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남들이 보면 하찮은 일이겠지만, 그 일로 가족 모두가 먹고 산다는 것이 그를 기쁘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그릇이 누군가의 식탁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큰 보람으로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사니까 세상적인 욕심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겠지요. 생활은 늘 소박했고, 누구보다도 행복했습니다.

어느 날, 그곳을 지나가던 행인이 그를 보고 빈정거리듯이 물었습니다.

"그게 돈이 되겠어요? 그렇게 해서 돈을 얼마나 법니까?"

그는 하던 일을 계속하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하하… 저는 돈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니라 행복을 짓고 있답니다."

많은 철학자들은 행복한 삶이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마치 그분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더’ 가지려는 탐욕 때문은 아닐까요?

옛날에 우정이 두터운 친구들 셋이 여행을 하다가 길에서 금덩어리 하나를 주웠습니다. 그 금덩이를 팔아서 셋이 똑같이 나눠 갖기로 했습니다. 금을 팔기 전에, 세 사람은 축하의 의미로 술을 마시기로 하고 주막으로 갔습니다. 술을 받아 오던 한 친구에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술에다가 독약을 타서 두 녀석을 죽이면 이 금덩이는 몽땅 내 것이 되겠다.’

그 친구가 독약을 술에 탈 때, 방에서 기다리던 두 친구 역시 고약한 생각을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우리 둘이 더 많이 가지려면 저 녀석을 죽여야 해!"

그래서 술을 들고 들어온 친구를 죽였습니다. 그러고는 가져온 술을 나눠 마시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두 친구들 역시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바로 탐욕이 준 비극이겠지요.

어느 분이 자신의 일기에서 "오늘은 아들과 함께 낚시를 갔다. 하루를 몽땅 낭비했다"라고 썼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날, 아들의 일기장에는 "오늘 아빠와 함께 낚시를 갔다.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날이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똑같은 낚시를 했음에도 부자간에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를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아버지는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오로지 ‘성취’나 ‘성공’만을 위해 살아오지는 않았을까 싶습니다. 성공이 ‘가지고자 하는 마음’이라면, 행복은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성공이 ‘이기기 위한 마음’이라면, 행복은 ‘져줄 줄 아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성공이 내일의 기쁨을 위해 오늘을 견디며 살아가는 마음이라면, 행복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길 때’ 솟아오릅니다.

아들은 낚시를 ‘아빠와 함께 하는 놀이’로 생각했기 때문에 가장 멋진 날로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아빠는 시간을 투자의 관점에서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무의미하다고 여겼을 지도 모릅니다.

행복해지려면 어린 아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많은 철학자들이 조언해주고 있습니다. 영국의 한 언론사가 ‘가장 행복한 사람’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보았는데요. 4위는 ‘어려운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의사’였고, 3위는 ‘섬세한 공예품을 완성하고서는 휘파람을 부는 목공’이었으며, 2위는 ‘아기의 목욕을 막 끝낸 어머니’였습니다. 그런데 1위는 의외였는데요. 바로 ‘모래성을 막 완성한 어린이’였습니다.

내 눈앞에 있는 모래들! 그 모래로 모래성을 쌓는데 온 정성을 들이는 아이! 그 아이에게 무슨 탐욕이 있겠습니까. 그저 아름다운 성을 쌓는 것 외에는 말입니다. 새해엔 독자 여러분 모두가 더 행복해지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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