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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환 사회부장
세상이 하도 시끄럽고 어수선해서일까. 별의 별일을 겪다보니 기도 안차서일까. ‘사상 최악’이래야 대수롭지 않다는 투다. 조류인플루엔자(AI)의 사태가 그렇다. 역대 최악으로 재앙수준이다. 최단 시간에 최대 마릿수를 살처분했다. 그깟 닭, 오리쯤 사라진다고서야, 길 고양이 따위 몇 마리 죽어 나자빠진들… 그저 별스럽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무감각한 초기대응과 방역체계가 이런 모양새다. 관심단계에 긴급백신(항원뱅크)비축이나 공급체계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정부는 해명을 내놓았다. "그건 구제역에 해당된 얘기이고, 관심단계의 AI에서는 그런 매뉴얼이 없다."

 궁색한 변명이다, 현실을 못 쫓아가는 매뉴얼을 과연 신줏단지 모시듯 해야 하는 것인가. 새 매뉴얼을 만들어 적용하면 세상이 뒤집히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이번 AI는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미증유의 사태다. 그만큼 국면이 급박하고 무겁다. 그에 맞는 새로운 위기관리 능력과 대처방안이 절실하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고병원성 AI(H5N6형)를 탓하며 애꿎은 철새만 흔들어 대고만 있을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달걀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005년 12월에 비해 산지가격은 60% 이상 올랐다고 밝혔다. 소비자 가격 역시 30% 정도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달걀 수입을 늘리고, 사재기를 단속하겠다는 대책을 세웠다. 알 낳는 닭(산란계)의 생산주령도 68주에서 100주로 늘릴 방침이다.

 입에 발린 대응방식이다. 숫자 놀음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달걀은 그냥 동물의 알이 아니다. 그 파급력이 어마어마해 쉽게 가격이 오르내릴 성질의 물건이 아니다.

 기름 값이 천정부지로 솟았던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요지부동이었던 것이 달걀 값이었다. 달걀이 ‘1원의 경제학’으로 대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3만 마리를 기르는 양계농가가 있다고 치다. 산지 달걀 값이 1원 내릴 때 그 농가는 하루에 3만 원, 한 달이면 100만 원의 적자를 본다. 양계농가가 도산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반대로 1원이 올랐을 때 달걀을 식재료로 쓰는 토스트 노점상과 빵집이 금세 타격을 입는다.

 현대경제연구원은 AI 감염률이 10%일 때 농가 피해(1천671억 원)와 정부 지출(1천187억 원) 등 직접 기회손실을 2천858억 원으로 추산됐다. 사료산업과 육류가공업, 음식업 등 간접기회 손실은 208억 원으로 추정했다. 감염률이 20%일 때는 9천846억 원, 30%일 때는 1조4천769억 원으로 피해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달걀은 수요층이 두터워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을 볼 때 달걀이 주는 1원의 경제학은 우리 사회에서 무너진 셈이다.

 산란계의 생산주령 상향 조정도 위험천만한 일이다.

 인류는 오래 전 야생 멧닭을 집에 데려다가 키우면서 알을 잘 낳는 닭, 굵은 알을 생산하는 닭을 인위적으로 선택해왔다. 그 탓에 지금의 닭은 유전 형질적으로 거의 비슷하다. 거의 복제 수준에 가깝다. 알에서 부화하자마자 산란계들은 항생제부터 맞는다. 먹이도 항생제가 든 사료를 먹인다. AI처럼 전염병이 돌 경우 양계장은 쑥대밭이 된다. 인간의 간섭으로 거의 같은 산란계의 면역력이 바닥을 보이기 때문이다.

 산란 주령을 늘렸을 때 그 닭은 전염병에 취약하기 마련이다. 인류가 노산(老産)의 위험성을 경계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폐계로 처분해야 하는 늙은 닭에게 알을 낳으라고 계속 재촉하다가 막상 또다시 AI가 닥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는 AI 청정국인 호주에서 달걀을 수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호주는 500마리 이하를 기르는 양계농가에서는 항생제를 놓지 않은 채 풀어 기르는 유기농을 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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