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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신년이 되자 많은 언론매체들이 정치·경제 등의 현안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고 있는데, 그 중 헌법 개정에 대한 찬반 지지율이 눈길을 끈다. 한 보도에 따르면, 개헌 찬성의견이 76%이고(반대의견은 7.9%), 이 중 개헌을 대선 이전에 해야 한다는 의견이 40.4%라고 한다(대선 이후에 해야 한다는 의견은 35.6%인데, 연령대가 높을수록 대선 이전에 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식의 언론보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어떤 방향, 어떤 내용으로 개헌할 것인지를 전혀 제시하지 않은 채’ 무작정 "개헌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그리고 "개헌을 대선 전에 해야 하는가, 대선 후에 해야 하는가?"를 묻고 그 조사결과에 무슨 중대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며, 여론을 왜곡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든다.

 혹자는 현행 대통령중심제를 의원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로 바꾸자고 한다. 그러나 통치구조 개편 논의에는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 국민 정서, 남북관계 등이 종합적으로 참작돼야 한다. 의원내각제가 성공하려면 대화와 타협 등 고도의 정치능력이 필요한데 우리 정치권이 그만한 역량을 갖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또한 현행 헌법상으로도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일부 반영돼 있는데(대통령의 국법상 행위에 대한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의 부서(副署)제도,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과 국회출석·발언권, 국무위원의 의원직 겸직 허용, 국회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에 대한 해임건의권 등), 굳이 대통령중심제를 의원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로 바꿔야 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통치구조 개편 논의가 현실 정치세력 간의 ‘권력 나눠먹기’를 위한 정략적 발상으로 비쳐질 공산도 꽤 크다. 통치구조 개편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제왕적 대통령제’를 탈피해 ‘분권형 통치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당위론을 논거로 제시한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권력 집중과 남용은 ‘제도상의 미비’라기보다는 ‘운용상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진단일 것이다(가령 ‘비선실세의 국정 농단’이 헌법제도의 결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일부에서는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하되 현행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 또는 5년 중임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5년 단임제로는 국정의 안정적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긴 하지만, 그 장단점과 우리 헌정사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현행 5년 단임제하에서도 권력 쟁취를 위해 국정원 댓글사건 등 공권력에 의한 여론 조작 내지 선거 개입 의혹이 제기돼 온 마당에 만일 중임제가 허용되면 현직 대통령의 중임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무리수가 동원될 우려가 크다. 헌법이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제70조),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제128조 제2항)는 규정을 둔 취지는 평화적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하고 정권 연장의 병폐를 막기 위한 데 있다. 과거 수차례나 장기집권에 의한 독재의 폐해를 ‘뼈저리게’ 경험한 우리 국민들의 기억에 비춰보면,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은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더 클 수 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촛불민심을 거역해 또다시 ‘장기집권의 폐해’를 역사 속에 초래하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현 시점에서 헌법 개정은 크게 절실하거나 시급한 사안이 아니다. 헌재의 탄핵심판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조기(2월 말 내지 3월 초)에 판정이 나올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대통령 선거는 4월 26일이나 5월 10일이 유력하다는 예측이 있다. 그렇다면, 대선 이전의 개헌은 사실상 어렵게 될 수 있다. 한편, 헌법 개정을 ‘군사작전하듯’ 졸속 추진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국민의 행복 증진을 위한 빅 픽처(Big Picture)와의 연계하에 쟁점 조항과 개선방안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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