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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림 칼럼니스트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 시 닉슨은 주은래 수상에게 1789년의 프랑스혁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 당시 통역이 제대로 전달했는지 모르지만 주은래 수상은 "지금 프랑스혁명을 평가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다"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이는 중국인들의 역사에 대한 해석과 역사적 사건의 평가가 단기적인 안목에서 이뤄지지 않고 역사의 큰 흐름에서 신중하게 판단하는 대륙적인 기질을 암시하고 있는 명언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대통령 하야 촛불집회는 탄핵 가결을 넘어 탄핵 인용판결 촉구로 이어지고 있으며, 성급한 논객들은 이를 촛불혁명, 시민혁명이라고 일컫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것이 과연 혁명이 될 수 있는 지에 대한 평가는 훗날의 역사가들에게 맡겨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한편 이번 일련의 사태에서 ‘국가는 누가 다스리나?’라는 물음을 많은 사람들이 해보았을 것이다. 우리 헌법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된 반면, 미국 헌법 전문에는 미국을 실제로 다스리는 주체는 국민이 아니라 헌법임을 규정하고 있다. 즉 국민이 아니라 법이 권한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는 법과 질서의 시스템으로 국가가 운영돼야 하는지, 아니면 광장으로 표출되는 군중의 집단적 판단이 우선이 돼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지난 12월 시사전문지인 ‘포린 폴리시(FP)’의 마이클 브린이란 기자는 "한국식 민주주의, 국민은 분노하는 신이다"라는 제목에서 한국인들은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고 받아들였지만, ‘집단적 의지’와 ‘폭민정치’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요약했다. 그가 보고 느낀 바에 의하면, 한국은 통치자와 피통치자 모두 ‘국민’ 또는 ‘집단적 의지’가 국가를 주도한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국민의 ‘집단적 판단’이 옳은지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외국 기자들에게는 촛불시위로 국가의 중대 사안이 결정되는 것이 잘 이해될 수 없다는 논리이다. 검찰의 수사내용과 달리 기자가 본 탄핵 이유는 대중에게 일면식도 없는 여자로부터 대통령이 조정당했다는 사실이 국민의 분노를 가져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법에 기초된 미국이었다면 대통령 탄핵 처리절차는 워터게이트사건 수사처럼 2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고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게 될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민중 감정이 어떤 제한선을 넘으면 야수로 변해 국가의 의사결정기구나 법을 무력케 하는 권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를 민심 또는 국민정서라고 하며 국민정서가 법 위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확히 표현하면 ‘군중의 감정’이나 ‘폭도의 열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태에서도 군중이 촛불시위로 의사결정권을 가지자, 모든 국가기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가의사결정기구인 국회와 검찰이 국민의 명령에 따라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논지의 초점이다. 이번 탄핵사태와 같이 대통령도 실패할 수 있지만, 문제는 국민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민주권주의는 국민이 그 대표를 통해 간접적으로 국정에 참여하는 간접민주제를 취하고 있으므로, 대표의 심판은 국민의 현명한 투표권 행사로서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했을 경우, 특히 지역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국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민심이란 이름으로 법과 질서를 무력케 하는 민중시위는 국내외의 불확실한 현실에 직면한 상황에서 이제 그칠 때가 됐다. 정부와 정책에 반대하는 자체가 공평과 정의를 항상 구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광우병사태와 같이 다수의 생각이 위험할 때가 있고 그릇될 수 있는 사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도자 한 사람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그가 한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은 건강하거나 옳은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혁명이 누적된 적폐를 청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프랑스혁명 당시 있었던 이야기가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루이16세 왕비인 마리 앙뜨와네뜨가 한 신하에게 물었다. "혁명이란 무엇이냐?" 그랬더니 그 신하가 "마담! 내가 여왕이 되고 당신이 내 시녀가 되는 것이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자리바꿈만 일어나고 그 사이의 억압과 착취 구조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혁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다음 정부가 제왕적인 통치시스템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국민의 분노는 수평적 정권교체란 자리바꿈만 초래케 한 것이며, 이는 또 다른 국민과 국가의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불행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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