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것들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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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것들에 기대어
신효성 소설가/기호일보 독자위원
  • 기호일보
  • 승인 2017.01.24
  •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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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소설가
국립국어원에서 펴내는 소식지에 실려 있는 ‘흘러가는 것들에 기대어’라는 문구에 꽂혀서 칩거하고 있던 몸과 마음을 깨워 산책을 나섰다. 한파주의보 내린 날씨는 매섭고 차서 볼살이 아리다. 올 겨울 들어서 최강 한파라는 일기예보가 실감나는 날씨다.

겨울은 겨울답고 사람은 사람다워야 뒤탈이 없을 터이다. 겨울이 포근하면 웃자란 산천초목이 꽃샘추위에 냉해를 입거나 제철에 맞는 걸음보다 앞질러서 때를 맞추지 못한 사단이 생길 것이고 겨울을 쉽게 넘긴 병충해도 기승을 부려 큰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하다.

저 윗선에서 풀어놓은 마당극이 자극적이라 국민의 피로도가 상승하고 있다. 잠시 잠깐 끝날 일이 아니라서 머리가 아프다. 허우대 멀쩡한 능력자의 허언을 들어주기도 지쳐서 되레 국민이 머쓱해지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은 순리대로 흐르고 흘러서 흙탕물도 가라앉아 정화되고 날카로운 바위의 모서리도 깎아져서 둥글어지고 혹한의 추위도 풀리고 분방한 사건들도 정돈돼 차분해질 것이다. 혼돈의 시간이 길지 않기를, 매서운 한파의 기승이 오래 지속되지 않기를, 그래서 혹독한 시절을 견뎌서 이겨낸 경험이 무릎 꿇리지 않고 장한 에너지로 축적돼 가치 있어지기를 소원한다. 당연히 그래야만 할 것 같고 그래질 것이라는 신념들로 기대가 돈독해진다.

겨울에 피는 꽃이 있다. 뿔남천나무다. 겨울은 곤충의 수가 월등히 적어서 꽃가루받이를 하는데 노심초사 애면글면 힘에 겨운 수정을 이루려고 온갖 힘을 다하는 꽃이다. 노랑색으로 환한 불꽃을 매단 뿔남천나무는 자잘한 꽃송이가 다닥다닥 가지 끝에 모여서 피어난다. 황량한 겨울 풍경에 화사한 꽃방망이로 눈길을 끈다. 뿔남천나무의 꽃은 화려한 한 송이가 아닌 작은 꽃송이들이 옹기종기 기대어 체온을 나누듯이 추위를 견디며 피어 있다. 오래 피어 있어서 원하는 결실을 맺을 때까지 환한 자태를 보인다. 이맘때 1월이 절정이다.

뿔남천나무는 혼사가 이뤄질 때까지 북풍한설이 매서워도 작고 여린 꽃잎을 서로 어루만져서 서로에게 기대어 튼튼한 자손을 남기려고 진지하고 엄숙하게 생을 견뎌낸다. 근친혼을 피해 자가 수정을 막아내려고 비장한 극기를 한다. 쉽게 선택한 자가 수정의 참담한 경험을 되새김하면서 꿋꿋하게 버틴다. 환경의 변이를 오판한 외도가 아닌 튼튼한 자손을 세상에 내보내기 위한 숭고한 인내다.

불온한 힘에 눌려서 세상은 원래 불공정한 것이니 애쓰지 말자고, 한계에 무릎 꿇어 자존감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의지가 아닌 타의로 힘들어진 세상은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매서운 추위에 위축된 몸을 펴고 걸었다. 몸이 훈훈해진다. 집을 나설 때의 냉기와 찬바람은 여전하지만 몸을 활발히 움직여서 걷다 보니 체감온도가 달라진다. 견딜 만하다.

건강 상담을 하는 의사가 조언을 했다. 하루 8시간 이상을 의자에 앉아 있거나 움직이는 생활습관을 가지지 않으면 평균 수명이 8년 이상 줄어 든다고 운동을 권했다. 오래 사는 장수를 소망하는 것이 아닌 건강수명을 누리려면 몸도 마음도 기운을 북돋우는데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건강한 몸도 건강한 세상도 거저 얻어지는 공짜는 아니어서 스스로에게 예의를 갖추는 일이 필요하다. 흘러가는 대로는 무기력으로 포기하라는 말이 아닐 테다. 파괴와 급진적 혁명이 아닌 물길을 만드는 자연스러움으로 평온히 흘러가는 세상에 기대어 아름다워지고 싶다.

공원의 산책길에서 관찰자가 되어 자연을 만났다. 세상도 보이고 나도 보인다. 자책으로 울퉁불퉁해진 마음을 빈약한 햇살에 해바라기를 해 본다. 온기가 조금씩 몸 안에서 피어 오른다. 새해 2017년은 빠르게 흘러서 1월의 끝자락이다. 마음 설레며 설계했던 일들이 작심삼일이 됐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구정을 기다리며 새로운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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