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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중국 동북부지역에 있는 고구려 유적지, 항일유적지, 한국전쟁 유적지, 백두산 등을 둘러본 한국인들은 우리 역사에 대해 자못 숙연한 느낌을 갖게 된다. 특히 조상의 피로 얼룩진 항일유적지를 둘러 볼 때면 가슴이 크게 아려옴을 느끼게 된다.

필자가 수년 전 하얼빈역, 가곡 ‘선구자’에 나오는 일송정·해란강, 대성중학교, 시인 윤동주 생가 등을 방문했을 때도 심장이 크게 박동치는 느낌을 받았었다. 같은 역사를 지녔다는 것처럼 뜨거운 연대감이 또 있을까.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박근혜 정부 불통정책의 상징이다. 역사학계는 물론 국민 대다수가 반대했지만 정부는 이를 거슬러 일방적으로 강행 추진했다. 국정화의 명분도 절차도 ‘비정상’으로 점철됐다. 국민 통합을 위해 국정화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결국은 국민을 심하게 분열시키고 상처 입혔다. 누구를 위해 왜 하는지 도시 알 수 없는 국정화였다.

지난해 12월 27일 이준식 교육부총리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폐기’를 주장하는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2018년 국검정 혼용방침’을 발표했다(국정이면 국정이고 검정이면 검정이지 국검정 혼용은 ‘꼼수’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리고 며칠 전 1월 31일에는 이영 교육부 차관이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이냐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냐를 놓고 큰 논란을 일으켰던 대한민국 건국 시기와 관련해 국정 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수립’으로, 검정 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표현도 가능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검정 역사 교과서 편찬기준에 유의사항으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출범에 대해 ‘대한민국 수립’,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으로 표현하는 다양한 견해가 있음에 유의한다"는 문구를 추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꼼수’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정은 물론 검정교과서의 편찬(집필)내용과 방향을 규정한 교육과정은 ‘대한민국 수립’을 학습요소로 적시하고 있는데, 이를 개정하지 않고 하위 개념인 집필 유의점으로 ‘대한민국 정부수립’ 표현을 허용한 것은 편법이라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꼼수’는 학습현장에서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가령 학교 시험이나 수능에서 대한민국 건국시기에 관한 문제가 나올 경우 어떻게 답해야 할지 혼란스럽게 될 것이다. 특히 우리 헌법은 전문(前文)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法統)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선언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1948년 대한민국 건국절 주장은 위헌성을 지닌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영 차관은 "국민이 볼 때는 ‘대한민국 수립’이냐 ‘정부 수립’이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고 했다고 하는데, 사안의 중대함을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태도가 애잔하기까지 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교과용 도서의 범위·저작·인정·발행·공급·선정 및 가격 사정(査定)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초중등교육법 제29조 제2항은 교육제도를 법으로 정하도록 한 헌법 제31조 제6항과 헌법 제75조가 규정한 포괄위임 금지 원칙에 반한다면서 현재 법적 쟁송을 벌이고 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은 2월 안에 역사교과서 국정화금지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킬 계획이다.

그동안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싸고 벌여온 우리 사회 내의 수많은 갈등과 반목을 이제 마무리하고 평온함으로 돌아와야 한다.

정부가 미련을 갖지 말고 ‘쿨’하게 ‘국정화 추진 중단’을 선언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역사는 역사로서의 실체와 진실을 오롯이 지니고 있는데, 국가가 이를 인위적으로 ‘규정’하려 드는 것이 가당한 것일까. 국가가 이를 해도 되는 것이며, 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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