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jpg
▲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헌재의 탄핵심판과 특검의 수사를 지켜보며 국민들의 법률 지식과 이해가 한층 높아졌다. 그런데, 같은 사안을 두고 법률전문가들의 견해가 왜 그렇게 극명하게 엇갈리는지에 대해서는 이유를 알 수 없어 혼란을 느낀다. 예컨대 특검은 청와대 압수·수색이 ‘합법’이라 하는데 대통령 측 변호인들은 ‘위법’이라고 주장하니 어리둥절해진다. 또한, 대통령 측 변호인들이 (증인·재판관들로부터 면박을 받으면서까지) 비논리적 주장들을 시간 끌기 식으로 늘어놓는 것을 보면서 법조인의 기대 이하의 유치한 수준에 놀란다.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란 말이 있다.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뜻으로, 처한 상황에 따라 교묘한 논리로 자의적 주장을 내세우는 법조인을 겨냥해 비아냥댈 때 자주 사용된다.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그리스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철학사상가이자 교사들을 소피스트(Sophist)라 부르는데, 이는 본래 ‘지혜롭고 현명한 자’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이들은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논변술을 강조하였으며, 진리와 정의를 상대적인 기준에서 바라봤다.

 최초의 소피스트라 불리는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라는 말로 진리의 주관성과 상대주의를 설파했고, 수사학 교사 트라시마코스는 보편적 정의란 없으며 "정의는 강자의 이익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피스트들을 궤변론자라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지만, 소피스트 사상은 윤리·종교·제도 등의 가치 기준을 상대적인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절대적이라고 여겨졌던 것을 이성적으로 고찰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한다. 오늘날 법학이 ‘가치절대주의’를 배격하고 ‘가치상대주의’를 기본 입장으로 삼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가치상대주의는 자칫 허무주의로 빠질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성을 갖는 이유는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철학이기 때문이다(다수결 원리의 기초).

 대법관·헌법재판관 등을 지낸 원로 법조인 9명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은 위헌이라며 지난 9일 조선일보 1면 하단에 광고를 냈다. 이에 대해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원로 법조인들은 국회가 신문 기사와 심증만으로 탄핵을 의결했다고 말하지만, 탄핵소추를 한 결정적인 계기는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검찰이 작성한 최순실·안종범·정호성 공소장에 기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9명 헌법재판관 전원이 참여하지 않으면 하자가 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법마저도 왜곡한 것"이라며 "헌법재판소법 제23조에 따르면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명백한 사실까지 무시하고 지금 헌재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왜곡하는 것은 곡학아세"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은 촛불집회를 "헌재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비난한다. 그런데, 원로 법조인들이 ‘탄핵심판에 관한 법조인의 의견’이라는 제목의 광고를 통해 "순전히 법률전문가로서 법적인 견해를 밝혀 헌재의 판단에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며 헌재를 가르치듯이 직접적·중대한 영향을 미칠 요량으로 궤변·왜곡으로써 사법권의 독립을 위협하고 있으니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마치 그들의 의견이 전체 법조인의 의견이며 유일한 정론(正論)인 양 나타내 보이면서 이런 엄청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사람들이 법조계의 최고위직에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러니 법조인들이 싸잡아 (학문적 양심을 저버리고 강자에 기생하는) ‘이현령비현령’, ‘곡학아세’라고 욕을 먹는 것이 아닌가.

 법적 판단은 여론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하지만, 주권자인 국민의 법감정(국민의 약 80%가 탄핵에 찬성한다)과 현저히 유리된 소위 법조계 원로들의 탄핵반대 주장은 경솔한 처사이며, 법조인 전체에 대한 불신과 야유를 심화시킬 뿐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