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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불평과 불만이 올라옵니다. 매사에 불만이 많은 어느 청년이 왕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습니다.

"대왕님, 세상은 왜 제 뜻대로 되지 않을까요? 저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어느 누군가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는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살아야 성공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왕은 잔에 포도주를 가득 따르더니 "이 포도주 잔을 들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오면 너에게 해답을 가르쳐주마.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한 방울이라도 포도주를 흘리면 네 목을 베겠다"라고 경고했습니다.

청년은 조심스럽게 잔을 들고 시내를 한 바퀴 돌고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왕이 물었습니다.

"시내를 돌면서 무엇을 보았느냐? 거리의 걸인들과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았느냐? 혹시 술집에서 새어나오는 노랫소리는 들었느냐?"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사실은 포도주 잔에 신경을 쓰느라 어느 것 하나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왕이 불평과 불만을 없앨 해법을 알려줬습니다.

"바로 그것이란다.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야. 삶의 목표를 굳게 세우고, 네가 하는 일에 집중하면 주위의 온갖 유혹이나 너에 대한 비난이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포도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게 행동한 것처럼 그렇게 살도록 하여라."

삶의 본질은 무척이나 단순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포도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지 않고 걷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 본질에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맡길 수만 있다면 어떤 유혹과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갈 겁니다.

독자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신 우화 하나가 생각납니다. 고양이의 존재가 두려워서 쥐들이 의논을 했습니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어린 쥐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고 제안합니다. 모든 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냈지만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를 두고는 난감해졌습니다. 결국 제안을 한 어린 쥐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어댔습니다.

그때 어린 쥐가 일어나 이렇게 외칩니다.

"왜 모두들 ‘누가’ 방울을 매달 것인가에만 매달리나요? 이제부터 ‘어떻게’ 방울을 달 것인지를 고민하면 어떨까요?"

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떻게’ 방울을 달 것인지를 논의한 끝에 결국 ‘절인 고기를 훔쳐다가, 그 속에 수면제를 넣어 고양이 굴 앞에 갖자 놓자. 그래서 고양이가 잠들면 그때 방울을 달자’는 결론에 이끌어냈습니다.

대부분의 불평불만은 세상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는 데서 발생합니다. 그 기준에 도달하면 만족해하지만 도달하지 못하면 불평과 불만을 토로할 테니까요.

많은 철학자들에 따르면, 행복은 그와 같은 세상적인 기준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발견된다고 말합니다.

세상이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고 불만을 가진 청년은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 포도주만을 생각하며 세상 밖의 기준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불평과 불만은 몰입해야 할 자신만의 일이 없기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이 살아 있는 이유인 본질에 매진할 때는 누구나 희망을 갖게 되고,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이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일 겁니다.

고양이라는 무서운 존재의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를 두고 논의를 해봤자 해답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고양이에게 다가가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린 쥐의 지혜처럼 ‘어떻게 방울을 달지?’라고 생각을 바꾸기만 하면, 여러 가지 방법들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행복이란 무척 쉬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누가’를 ‘어떻게’로 생각을 바꾸기만 하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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