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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인간 심성의 바탕이 선한지 악한지에 대해 맹자(孟子)로 대표되는 ‘성선설(性善說)’과 순자(荀子)로 대표되는 ‘성악설(性惡說)’의 대립이 있다. 인간사회에서 벌어지는 천태만상의 선악 행태들을 보면 어떤 때는 성선설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성악설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의 심성을 한 가지 측면으로 규정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난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차기 유력한 대권 주자로 떠오른 안희정 충남지사가 "이명박·박근혜 대통령도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과 국민 위해 좋은 정치하려고 했는데 뜻대로 안 됐던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이른바 ‘선한 의지’를 운운한 발언을 했다가 비판이 커지자 사과를 했다. 본인이 시인했듯이 이 문제를 (기왕의 ‘연정 제안’과 함께) 너무 나이브(naive)하게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부패무능·국정농단 등 헌정질서 훼손 중대사안들을 단순한 선의·악의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옳음·그름의 관점, 즉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법학에서는 ‘선의’를 ‘선한 의지(착한 마음)’로 ‘악의’를 ‘악한 의지(나쁜 마음)’로 이해하여 이를 일반적인 법률요건(또는 책임요건)으로 취급하는 경우는 드물다(종교, 도덕·윤리의 영역에서는 ‘(선의·악의 등의)동기’가 중요하게 고려되지만, 법의 영역에서는 외부로 표출된 ‘행위’가 중요하게 고려되고 ‘동기’는 예외적으로만 고려될 뿐이며, 책임 요건으로는 ‘고의’와 ‘과실’이 고려된다). 법학에서는 통상 ‘선의’를 ‘어떤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악의’를 ‘어떤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의 의미로 이해한다(관념적 용태). 예컨대, 민법 제249조는 "평온, 공연하게 동산을 양수한 자가 선의이며 과실 없이 그 동산을 점유한 경우에는 양도인이 정당한 소유자가 아닌 때에도 즉시 그 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선의취득제도), 여기에서 ‘선의’란 ‘양수인이 목적물을 취득할 당시에 양도인이 무권리자임을 알지 못한 것’을 뜻한다. 형법에서 ‘동기’는 일종의 ‘양형 참작 사유’로 취급된다(제51조).

 지난 27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했다. 특검법에서 규정한 주요 사건의 당사자와 관련자들이 "이미 기소했거나 기소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수준으로 수사가 진행돼 특검법의 주요 목적과 취지가 달성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는 최순실 게이트 실체규명을 위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면조사,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모금과 관련한 대기업 수사, 비선진료 의혹 및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추가 조사 등을 위해 연장이 필요하다는 야권의 주장과 배치된다. 또한 특검 연장에 찬성하는 약 70%의 국민의 뜻에도 반한다. 특검 측에서도 "특검은 특검법 수사 대상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되지 못한 상황인데 황 권한대행이 수사기간 연장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점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이렇게 보면, 황 권한대행이 특검 연장을 거부한 배경에는 법적 측면보다 정치적 측면(탄핵반대론자들의 여론과 대선 유·불리 등)이 우선 고려됐다고 봄이 타당할 것 같다. 그리고 이는 ‘범죄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직무로 하는 검사의 길을 걸어온 황 권한대행이 스스로를 자기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탄핵반대론자들은 "대통령에게는 죄가 없다", "잘못이 있더라도 탄핵할 만큼 큰 잘못은 아니다", "죄 없는 자가 대통령에게 돌을 던져라"고 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선한 의지’를 강조한다. 또한 "헌재가 약한 여자 편을 안 든다", "약한 여자 대통령을 지켜드리지 못하는 대한민국 남자들이 부끄럽다"고 ‘약한 여자’론을 보탠다. 나아가 "탄핵이 인용되면 내란이 발생할 것, 아스팔트에 피가 뿌려지는 참극을 보게 될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을 내놓으며 헌재 결정 ‘불복’마저 시사하고 있다. 일부 정치인과 법률가들이 ‘선한 의지’의 관점을 ‘법’의 관점보다 강조하는 것은 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요소인 ‘법치주의’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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