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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 탄핵 열차가 종착역으로 향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외적으로 여러 난제가 속출하고 있다. 국내적으로 정부 정책은 동력을 잃었고, 국정 공백의 장기화에 따른 문제점은 한둘이 아니다. 국론 분열도 심각한 상태다. 막장 드라마 수준의 궤변과 몽니가 판치고, 정치적 공황에 빠진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는 내란 선동 발언까지 재생산되고 있다. 탄핵 찬반을 둘러싼 갈등이 급기야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파탄을 초래하고 있다. 국외적으로는 중국과 일본, 이웃 나라들과 갈등이 심상치 않다. 특히 사드 배치로 ‘한반도가 화약통, 한국 제품 불매운동’이라는 중국의 비판이 거의 협박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소녀상 철거를 두고 일본이 도덕적 우위에 서서 우리를 압박하는 형국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사드 배치 문제가 제기됐을 때부터 이미 관영 언론 매체들을 통해 사드가 배치되면 실력 행사를 불사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혀 왔고, 중국 민중의 혐한(嫌韓) 정서를 자극해 한류에 대한 견제는 물론 한국 제품 불매운동, 한국 기업에 대한 축출운동까지 광범한 제재 가능성을 운위해 양국 관계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난기류를 예고해 왔다.

 롯데가 성주 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제공하기로 하고 국방부가 5∼7월께 사드 배치를 밝히자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 민중이 사드 한국 배치에 반대한다는 것을 관련국들이 명확히 알 것이며 중국 민중의 소리도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외국 기업의 중국 내 경영이 성공할지 여부는 최종적으로는 중국의 시장과 중국의 소비자들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롯데 불매’를 얘기하는데 중국은 롯데에 징벌 조치를 취할 것인가?"라는 신문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으나 사실상 불매운동이 일어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으름장 비슷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중국 정부의 의사를 대변한다고 보이는 관영 매체들은 한국 정부와 롯데를 일제히 비판하며 불매운동을 부추겼다.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롯데 타격과 한국 징벌, 중국은 다른 선택이 없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한국산 차량 및 휴대전화 구입을 자제하고 한국 여행 계획도 취소하자고 제안했다. 한류에 대해서도 "한국 문화 상품의 수입 제한을 차차 높여 나중에는 완전히 봉쇄하자"고 했고, 롯데에 대해서는 "중국 시장에서 축출해 일벌백계하는 건 중국의 마땅한 위엄"이라고 주장했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한국이 사드 배치에 동의한 것은 스스로 반도를 화약통으로 만든 것과 같다"면서 불만을 노골화했고, 이 기관지가 운영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 샤커다오는 "사드가 배치되면 한중 관계는 준단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우리 정부의 대응책은 어떤가? 마땅한 방법은 있는가? 없다. 롯데가 전전긍긍하고 있듯이 고작 한다는 발표가 "양국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국 쪽 조처들이 관련 국제 규범에 저촉·위배되는지 등을 포함해서 법적 검토가 진행 중"이라고 덧붙인 것이 전부다. 물론 우리 정부의 대응 한계를 탓할 수만은 없다. 중국의 지나친 반응을 이미 예상하고 준비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른바 ‘소녀상’ 철거 문제를 두고 전방위적으로 압박해오는 일본 정부에 대해서도 우리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마치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듯 일본이 도덕적 우위에서 우리에게 강제하는 모습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재작년 12·28 위안부 문제 합의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일본으로부터 고작 10억 엔을 받고 위안부 문제를 끝낸다는 이면합의를 해 준 것이 아니라면 우리 정부가 일본의 총공세에 제대로 된 말 한마디 못하고 질질 끌려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보면 정말로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국내외로 숱한 난제가 있고, 당장 동북아에 불어오는 엄중한 상황임에도 우리는 지금 탄핵을 둘러싼 분열로 쓸모 없는 내부 충돌만 자극하고 더 키우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넓게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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