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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전오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레이첼 카슨의 유명한 저서 「침묵의 봄」은 살충제인 DDT 사용으로 인한 생태계 피해로 봄이 돼도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 암담함을 묘사한 걸작으로 80년대 대학생들의 필독서이었다. 그후 DDT 사용은 금지됐겠으나 우리 주위에서 자연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위험한 물질들과 인간의 행위들은 사라졌을까?

 모내기 준비로 바쁜 어느 봄날, 강화도 일원에서 철새 현황조사를 진행했다. 넓고 넓은 논에는 모내기를 위해 많은 농민들이 분주하게 트랙터를 몰거나 모판을 나르면서 봄의 활기를 느끼게 했다.

 그러나 철새 현황조사를 진행한 나는 여기 저기에서 허탕을 쳤다. 활기찬 봄이고 새들이 가장 많이 이동하는 계절인데 새들이 왜 이리도 보이지 않는가?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서서 석모도 넓은 들판을 여기저기 뒤지고 돌아다닌 나는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차렸다. 논갈이를 하고 있거나 준비하기 위해 물을 댄 논에 새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봄철에 흔히 보는 풍경 중 하나는 트랙터로 논을 갈면 백로와 왜가리가 트랙터를 따라 다니며 트랙터가 뒤집어 놓은 흙속의 벌레나 상처 입은 벌레를 손쉽게 집어 먹는 풍경이다. 그러나 드넓은 석모도 벌판에서 백로의 무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심지어 강화북단에서는 트랙터 뒤를 쫓아가는 새조차 없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철새 탐조에 허탕을 치면서 든 생각은 누렇게 떠 있는 논둑에 문제의 원인이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농사는 잡초와의 전쟁으로 흔히 그려진다. 고령화된 농촌에서, 그리고 대규모 논이 분포한 강화지역에서 논둑에 다량의 제초제를 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제초제를 모내기 전에 살포해야 모판을 나르거나 여타의 작업을 하는데 편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초제를 철새에게 직접 뿌린 것도 아닌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겠지만 제초제는 토양을 오염시킨다. 더불어 곤충의 먹이 자원인 식물을 죽이고 미세한 곤충을 죽게 한다. 따라서 저 넓은 논에 먹을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새들의 관점에서 보면 물은 있으되, 녹색의 벼는 심어져 있으되 사막과도 같은 논에서 굳이 먹이를 찾아 헤매고 다닐 이유가 없는 것이다.

 2008년 창원에서 국제사회는 람사르 총회를 개최했고 그 자리에서 논도 습지의 일환이라고 공표했다. 논이 거의 없다시피한 유럽인들의 관점에서 논이 습지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겠지만 아시아의 논은 거대한 습지로서 사람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명을 먹여 살려 왔다.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논에서 미꾸라지 잡거나 개구리를 잡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솔찮게 들었으니 논에는 수많은 곤충과 어류, 양서류가 살고, 그것을 먹이로 하는 인천 대표 조류인 저어새와 뜸부기 등 다양한 철새들이 먹이터로 활용했으니 아시아 고유의 습지가 바로 논인 것이다.

 그러나 제초제와 살충제로 대표되는 농약의 사용으로 인해 논은 사람들을 위한 쌀 생산 공장 외의 기능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자연이 건강하지 않으면 인간도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고 한다. 자연의 모든 요소가 배제된 농지에서 단지 우리 인간의 목적 한가지에만 충실한 경작 방식은 자연의 건강성을 더욱 낮추고 있다.

 논이 습지로서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급하게라도 제초제와 살충제의 사용을 줄여야 할 텐데 농촌은 고령화됐고 농업 인구는 감소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우리의 미래 농업현장에 대한 청사진은 어떠한 것인지 몹시 궁금하다.

 자연과 인간을 함께 배려하는 농업으로 진일보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누군가가 답을 알려주면 좋겠다. 침묵의 봄은 지금도 우리가 모른 곳에서, 우리의 관심이 부족한 곳에서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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