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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언론매체들은 헌재의 탄핵 결정에 대해 ‘주권자인 국민의 승리’, ‘이상적인 명예혁명’, ‘법치주의와 국민주권주의의 확인’, ‘헌법 수호의지의 천명’, ‘인치시대 법치시대로의 전환’, ‘부끄러운 과거와의 결별’, ‘박정희 시대의 종언’ 등등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외국 언론에서도 ‘한국의 젊은 민주주의가 진화했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이뤄낸 민주적 성과가 대단하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부럽다’는 등의 호의적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재임 중 파면당한 사건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고 부끄러운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불행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이번 사건을 통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대통령은 끊임없이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는 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실망스럽게도 취임 초부터 ‘불통’의 이미지를 일관되게 이어 왔다.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을 뿐 반대편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으며 진지하게 설득하려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자들을 적대시해 탄압하는 등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한 모습을 보였다. 모름지기 대통령이 직무를 원만하게 수행하려면 반대편 사람들의 목소리도 경청할 줄 아는 포용력과 균형감각을 지녀야 할 것이다.

둘째, 비서실장 등 참모진이 대통령에게 직언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판단에 문제가 있을 때에는 참모진이 적극 나서서 이를 만류하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김기춘 비서실장이나 안종범, 우병우 수석 등 참모진 중에 대통령에게 직언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수첩에 지시사항을 받아 적느라 바빴던 것 같다. 직언을 할 수 있는 참모를 주변에 두고 이들이 허심탄회하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등 대통령 스스로 민주적 리더십을 갖출 필요도 있다.

셋째, 불법적인 명령·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교적 전통하에서 상급자의 명령·지시를 하급자가 불복종하거나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하급자의 명령·지시 복종 의무는 상급자의 명령·지시가 합법적인 경우에만 성립되는 것이고, 어떤 경우에도 불법적 명령·지시에 따라야 할 의무는 전혀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재판과정에서 고위공직자들이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변명하고 있는데,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피할 수는 없으며, "따르지 말았어야 했다"라고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이다.

넷째, 우리 사회에 ‘공(公)과 사(私)의 구분’의식이 고양돼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국민들의 온정주의는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단점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혈연·학연·지연 등에 얽매인 지나친 연고주의를 탈피해야 하며, 친분 있는 사람끼리만 도움을 주고받는 소위 ‘우리가 남이가’라는 불합리한 의식과 행태를 빨리 탈피해야 한다. 영향력 있는 자에게 빌붙어 잇속을 챙기려는 간악한 모리배들, 또 다른 ‘최순실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 공적 직무수행에 사적 인연이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국민 모두가 유념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촛불민심의 에너지를 법과 제도의 지속적인 개선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향후 헌법 개정논의를 통해 더욱 발전적인 제도를 마련함은 물론이고, 법원·검찰·국정원 등 전반적인 시스템 개혁도 필요하다. 후손들이 민주국가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틀을 우리 세대가 마련해야 한다.

요컨대, 이번 헌재의 탄핵결정을 21세기 국가발전을 위한 새 출발의 계기로 삼아야 하며, 여기에는 국민적 화합과 단결이 필요하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이 "진실은 밝혀진다"면서 헌재 결정 ‘불복’ 의사를 내비친 점은 매우 유감이며 우려스럽다. 국가와 국민을 상대로 싸우겠다는 의지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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