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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탄핵이 인용되면서, 우리 정부 수립 이후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열한 분의 대통령이 물러나는 모습은 왜 이럴까 하고 착잡해하는 사람이 꽤 많다. 박수는 아닐지라도 국민의 마음속에 아쉬움을 남기고 떠난 대통령이 하나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 인물 탓일 수도 있고, 본인의 잘못일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정상적인 퇴임 모습은 기대하는 만큼 일어나지 않았다.

 지도자의 자질 탓이냐, 지도자를 키우지 않는 풍토 탓이냐 하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사실 인간 세상에는 어디든 지도자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국가나 정당은 물론 직장, 동창회, 계모임에 이르기까지 지도자가 있어 역량 발휘 여하에 따라 흥망성쇠가 좌우된다. 우리 사회에서 ‘리더십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담론이 왕성한 까닭이다. 요즘 대선 정국에서도 ‘포용적 리더십’을 둘러싼 지지율 1, 2위 후보 간에 설전이 점입가경에 이른 것도 마찬가지다. ‘포용적 리더십’이 진정 중요한 것일까?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따로 있다. 우리 사회가 지도자에 대해 어떤 개념을 갖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우리는 수직적·위계적 군사문화에 젖은 탓인지 ‘지도자는 곧 지배자’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지도자가 되는 게 권력을 손에 거머쥐는 것으로 여기는 그릇된 환상이 단단히 박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도자의 자리(사실은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려 사활을 거는 양상이 일반화돼 있다. 이런 모습은 인간 세상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피할 수 없겠지만 마치 지배의 정당성이 선거에서 이기면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것인 양 여겼다는 점에서 앞서 말한 70년 세월의 열한 분 대통령의 안타까운 퇴장으로 나타났다고 보면 과언일까.

 오늘날 국가 지도자로서 바람직한 리더십과 그렇지 못한 리더십에 관한 정의는 대략 3가지로 압축된다.

 우선은 위선적 지도자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인물은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이 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 기만적인 선전 구호는 그럴 듯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둘째는 무능한 지도자를 골라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진보적이고 똑똑하지만 구체성에 들어가면 별것이 없으려니와 토론 같은 말솜씨가 능수능란하다. 셋째는 독선적 사고방식을 가진 지도자에 대해 대중들의 쏠림 현상이 광범위하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애국심이나 친기업 마인드, 대중문화에 대한 적당한 신념을 혼합해 자신이야말로 오류가 없는 인물이라고 하면서, 때로 과거의 과오를 지적당하면 희생자처럼 행동하는 데 익숙하다는 것이다.

 이런 세 가지 유형의 지도자 형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병폐는 여러 가지 있겠으나 대표적인 것이 ‘인재를 고루 등용하지 않으며, 등용한 인재들까지 제대로 쓸 줄 모른다’는 점이다. 말만 번지르르하거나, 레이저 눈빛을 쏘거나, 거창한 철학적 신념을 내세울수록 권위가 생겨나기커녕 앞에서는 허리를 굽힐지 모르나 진심으로 복종하는 일은 기대난망일 테니 임기 말이 되면 레임덕 현상이 당연지사라는 말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풀어 쓴 「열국지」는 수백 개의 국가가 일곱 나라로 정리되고 진(秦)으로 통일된 전체를 아우르며 이렇게 끝을 맺는다. "자고로 흥하고 망한 나라를 살펴보건대 모든 원인은 어진 신하를 등용했느냐 아니면 간신배를 등용했느냐에서 판가름이 났다." 「사기」를 쓴 사마천 역시 비슷한 지적을 했다. "통치자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려거든 그가 기용한 사람들을 살펴보라."

 무엇을 말하는가? 리더십의 핵심은 인재를 끌어 모으고 그 가운데서 청렴하고 유능한 자를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데 있음을 명확히 하려는 것이다. 성공하는 지도자가 되려면 마땅히 ‘군인즉신직(君仁則臣直)’의 실현이다. 올바른 신하의 보좌를 받아야 어진 군주, 그러니까 성공한 군주가 된다. 여기서 어질다는 것은 성품에 흠결이 전혀 없다거나 포용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듯이 모두를 껴안는 그런 자세가 결코 아니다. 성공해 퇴임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면 탄핵이 됐다고 기존의 실패한 대의제 정당정치를 이대로 방치한 채 파면당한 권력과 공범이 분명한 국회에, 그리고 이 엄숙한 시기에 대연정이나 화해나 타협이니 하면서 개헌을 운운하는 정치꾼들에게 모든 걸 맡겨두고 기다리기만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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