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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유엔 자문기구인 유엔 지속발전해법네트워크(SDSN)는 2012년부터 매년 세계 각국의 고용, 소득 격차, 기대수명, 국내총생산(GDP), 정부와 기업의 투명성, 사회적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행복도를 산출하고 있다. SDSN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세계 155개국의 행복도를 조사한 ‘세계 행복보고서 2017’을 발표했는데, 우리나라는 56위에 그쳤다고 한다(1위는 노르웨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월드팩트북(The World Factbook)에 따르면 지난해 추정치 기준으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25명으로 세계 224개국 중 220위로 최하위권이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한다. 전 세계에서 한국보다 출산율이 낮은 국가는 4곳뿐이었는데, 홍콩(1.19명), 타이완(1.12명), 마카오(0.94명), 싱가포르(0.82명)이다. 또한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OECD 1위이고, 노인자살률도 OECD 평균의 무려 3배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 국민의 ‘삶의 질 제고’가 시급하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이를 위한 중요과제가 ‘근로시간 단축’이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천113시간(2015년 기준)으로 2천246시간의 멕시코에 이어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길다. 이러한 장시간 노동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 지난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주 7일 최대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 방향에 뜻을 모았지만, 할증률 등 세부사항에 이견이 있어 최종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환노위는 쟁점 사안에 대한 논의를 대선 후 재개하되 올해 안에는 마무리짓기로 합의했다고 하는데 그 귀추에 관심이 쏠린다.

 근로시간 단축은 노사 간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이다. 노 측은 근로시간 단축을 환영하지만 임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은 우려한다. 사 측은 "법정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 인력 운용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중소기업에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이라며 "특별 연장근로 허용과 휴일 근로 중복 할증 배제 등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점진적 시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국회가 법안을 마련할 때 노사 양측의 주장을 적절히 참작해야 하겠지만, 어떻든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 관행은 반드시 깨뜨려야 한다. 왜냐하면 장시간 노동 관행은 근로자의 건강 악화, 출산율 저하 등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또한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확대 효과도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안이 국회를 통과되기 전이라도 정부는 산업현장에서의 근로시간 운용 실태를 면밀히 점검하고 감독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왜냐하면, 현행법상 근로시간 규정마저도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은 산업현장이 많기 때문이다. 좋은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만들어져 있는 법이라도 제대로 지켜지도록 정부가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 정부가 현장 감독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근로자들이 야근과 휴일근무를 밥 먹듯 하면서 고통 받는 현실을 상당 부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의류업계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우리도 쇼핑할 시간 여유가 없는데, 누가 이 옷들을 쇼핑할 시간여유가 있겠는가?"라고 푸념했다는 얘기가 있다. 근로시간 단축이 삶에 여유를 제공하면 ‘소비 진작’이 이뤄지게 되고, 이는 ‘생산 유발’과 ‘일 자리 창출’의 효과를 불러 오리라고 본다.

 한편,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창의력’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시간 여유가 있어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 시간 여유가 없으면 ‘새로운 생각’을 할 여념조차 없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정부는 국회의 입법이 늦어지는 데에 핑계를 돌리면서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근로시간 규정의 위법·탈법 사례를 철저히 단속하고 처벌함으로써 국민들이 만성적인 ‘시간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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