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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의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촛불혁명, 그리고 대선 정국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것이 대한민국 헌법 제1조와 부끄러운 서울대라는 말이 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서울 법대 70주년 행사하면서 각계각층 유명한 서울 법대 출신 인사들 이름 학번별로 모아둔 전시물이 있는데 대한민국 망친 사람들 다 나옴"이라고 했다.

 사실 올해 서울대 재학생·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부끄러운 서울대 동문상’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대한민국 헌정사에 해악을 끼친 인물을 가리는 ‘멍에의 전당’ 분야에서 98%가 넘는 압도적 비율로 ‘법꾸라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꼽혔고, ‘2016 최악의 동문상’ 분야 1위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2위는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3위는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각각 선정됐다. 이들 네 사람은 모두 사법고시 합격자라는 점에서 한국 교육이 점수로 줄 세워 턱없는 우월감과 오만한 심성을 가진 ‘우등생’을 길러낸 결과라는 질타까지 나왔다.

 그동안 "서울대생은 공부는 잘하는데 인성은 별로다. 학업적 성취에 비해 인성 발달은 크게 부족하다. 능력은 있지만 조직 친화력이 부족하다. 똑똑한데 어떤 윤리로 살아가야 하는지 ‘공민(公民)개념’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았다"는 지적이 흔했다. 서울대 내부 평가도 다르지 않다. 서울대 교지 ‘관악’은 서울대생의 심리적 특성으로 대인관계 능력 부족, 지나친 자기중심적·개인주의적 경향, 타인의 관점과 입장을 배려하는 공감 능력 및 공동체 의식 부족을 꼽았다. 성낙인 총장은 2017학년도 입학식에서 "최근 서울대인들은 부끄러운 모습으로 더 많이 회자된다"고 했다. 김기춘·우병우·조윤선·김진태·류철균·남궁곤·이재용·윤상현 등등 다수의 서울대 출신들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을 염두에 둔 자성의 목소리였다. 성 총장은 "서울대라는 이름에 도취하면 오만과 특권의식이 생기기 쉽다"면서 "남의 의견을 경청할 줄 모르는 리더는 모든 이를 불행하게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갖고 모든 이에게 예의를 갖추라고 주문했다.

 타 대학에 비해 서울대 출신에 대한 비판이 많은 까닭은 국내 최고의 대학으로서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고, 서울대 출신 입장에서는 ‘능력을 탓할 게 없으니 품성을 갖고 뭐라 한다’는 반박을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성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요구되는 기본 자질이다. 현 사회에서 출세도 해야겠고 돈도 많이 벌어야 하겠고 경쟁에서 한 걸음이라도 앞서 가려면 옆이나 뒤를 돌아볼 겨를이 어디 있느냐 할지 모르나 세계적 명문대학 출신들은 사회적 책무를 결코 등한시하지 않는다. 영국 옥스퍼드대는 귀족 자제에게 더욱 엄격한 책무를 가르치고 전쟁이 나면 우선 입대하게 하는 전통이 있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에서 정말로 국민을 화나게 만든 건 배웠다는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신은 몰랐다, 그런 일 없다, 안 했다고 뻔뻔하게 발뺌하면서 책임은커녕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짓을 서슴없이 행했다는 점이었다. 서울대를 나와 고위직에 오른 사람들이 한국 사회 대부분을 장악한 현실에서 ‘서울대를 없애겠다’는 대선 공약까지 나올 만큼 서울대를 질타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 교육의 최고 우등생들이 ‘민주주의의 적’으로 나타난 현실에서 ‘부끄러운 서울대’는 오히려 애교 섞인 표현에 불과하다.

 1899년 대한제국 헌법에 해당하는 ‘대한국국제’가 공포됐을 때 제1조는 "대한국은 세계만국이 공인되어온 바 자주독립하온 제국"이라고 하고, 제2조는 "대한제국의 정치는 이전부터 500년간 전래하시고 이후 항만세(恒萬歲) 불변하오실 전제정치이니라"고 했다. 이 국제의 모든 조항은 오로지 황제의 권리만 규정하고 인민에게는 ‘군권(君權)을 침손하지 않을 의무’만을 부과했었다. 당시 속마음은 어땠을지 모르나 개화파 인사들도 이 국제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자신들의 출세에는 하등 지장이 없었을 터이니 당연시했을 수도 있다. 오로지 출세만을 노리는 능력자들에게 민주주의는 불편한 제도일까? 우리 헌법 제1조가 새삼스러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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