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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소설가
하루에 14대의 한국 비행기가 직항으로 다낭에 들어온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핫한 해외여행지 중의 한 곳이 다낭을 중심으로 한 후에와 호이안 지역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베트남의 국토 중간인 허리가 이 지역이라 전쟁으로 엄청난 피해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 전시에는 적의 병력 이동이나 군수물자의 수송을 막을 수 있어서 사수하거나 점령해야 할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던지라 미군의 최대 군사기지가 있었던 곳이다. 이 지역은 월남전 당시에 파월 청룡부대의 주둔지면서 격전지로 중요한 전선이었던 곳이라 우리에게는 낯선 곳이 아니다. 전쟁은 참전용사에게도 현지주민에게도 참혹한 트라우마를 만들었다.

 예전엔 한국인이라면 얼씬거릴 수도 없는 출입금지 지역이었다는 하비마을에는 민간인 학살 위령비가 있다. 하비마을의 비극은 우리도 한국전쟁 때 경험한 동병상련이다. 파월 청룡부대가 첫 전투에서 500명이 넘는 엄청난 전사자를 내고 패전한 후라 극도로 흥분한 후발 파병군인들이 민간인 틈에 숨어 들어 게릴라전을 전개하는 베트콩을 수색 진압하는 과정에 노인과 어린아이까지 하비마을의 양민 135명, 퐁니마을의 주민 72명을 학살한 사건이 있었다. 위령탑은 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극한 상황에서 빚어진 비극을 사죄하고 화해하기 위해서 월남참전전우회에서 2001년 12월에 제막했다. 생존자의 증언은 참담하고 애끓는 슬픔이다. 월남전 당시에 한국군은 대민 봉사로 미담도 많았다고 한다. 사원과 학교, 주택을 건설해 주고 사병들은 자기 몫의 레이션 박스에서 일정량을 떼어내 피난민들에게 제공하고 식량을 배급하고 농지개간을 도와주었다. 그럼에도 어떤 것도 사람의 생명을 대신할 우선 가치는 없기에 ‘미안합니다 비엣남’을 진심으로 전한다.

 처음 다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효성그룹이다. 효성의 파견 직원들은 ‘미안합니다 비엣남’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만나는 베트남 사람 모두에게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청했다고 한다. 냉담했던 현지 사람들이 한국인의 진심을 알아주어 친구가 됐고 우리가 버린 핏줄 라이따이한을 불러서 교육을 시키고 매니저로 성장시켜 현지인을 채용하는 권한을 줬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두 나라는 신뢰를 회복하고 화해하면서 베트남에 진출한 세계 기업 중에서 한국이 1위 투자국가가 된 발판을 마련했다고 한다. 오랜 전쟁으로 폐허가 된 후에는 1945년까지 응우옌 왕조의 수도로 제대로 남아 있는 유물이나 유적이 별로 없다. 후에 황궁의 초입에는 거대한 깃발 탑이 있다. 베트남 국기가 걸려 있는 이 장소가 월남전 당시에 3만 명이 전사한 치열한 격전지였다고 한다.

 여행자의 눈에는 햇살 쨍한 하늘 아래 강물은 무심하고 깃발은 처연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침략자의 위용은 여러 곳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후에의 도심을 흐르는 흐엉강에 엄청난 철 구조물로 세워진 다리 짱띠엔교가 있다. 파리의 에펠탑을 눕혀 놓은 것 같은 다리는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프 에펠이 설계한 다리라 하여 에펠브리지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또 홍등이 아름다워 야경으로 유명한 호이안에는 예전 일본인들이 중국 상인들을 견제하고 상권을 뺏어 오기 위해 만든 다리 꺼우낫반이 있다. 멀리서 온 손님을 맞는 다리라는 래원교 현판이 걸려있는 이 다리는 일본교란 이름이 더 친숙하다. 베트남 보물 1호로 명명돼 베트남 지폐에도 등장하는 다리다. 침략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 다리로 세계인을 불러 모아 화해와 공존의 역사를 만들어내고 국력을 키워가는 베트남의 저력이 느껴졌다.

 중국의 지배 1천 년, 프랑스의 지배 100년, 일본의 지배 5년, 미국과의 전쟁 16년, 통일된 이후에도 중국과의 국경전쟁과 캄보디아와의 전쟁 등 외세의 침입과 전쟁으로 평화로운 날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끈질긴 국민성과 자존감으로 최강국 미국을 전쟁에서 이긴 자부심이 이 나라를 지지하는 원동력이 됐다. 현재 결혼이주 여성으로 한국에 정착한 베트남 여성이 많다. 우리와 베트남은 혈연국가가 됐다. 이제는 베트남이라는 국명보다는 세계에 공인된 이름 비엣남으로 불러주고 서로의 상흔을 보듬어 예우해주면서 친구로 함께 할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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