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인.jpg
▲ 이우인 가평군 기획감사실장
"아이 하나 키우는 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전인적 교육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인용되는 말이다. 그러나 요즘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마을이 무수히 늘어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마을이 소멸되고 있고, 국가 경쟁력이 무너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라 향후 30년 안에 전국에서 84개 시군과 1천383개의 읍면동이 소멸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가평군 경우 126개 행정리 가운데 83개 리가 소멸 위기의 마을로 조사되고 있다. 20~39세 여성이 마을 인구의 10% 미만이고,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마을이 바로 소멸 위기의 마을들이다. 전체 주민이 255명인 한 마을은 65세 이상 고령자가 79명이고 20~39세 여성이 단 한 명 거주하고 있다. 이 마을은 가평군에서 소멸위기가 가장 높은 마을 중 하나다. 이런 이유로 가평군은 경기도 31개 시군 가운데 사망 대비 출생 비율이 가장 낮은 지자체다. 39년간 공직 생활을 하면서 우리 지역 발전을 위해 고민과 실천을 해온 나로서는 정말 충격적인 통계다. 나는 마을 주민들에게 ‘마을로 귀환’, ‘산촌(山村)자본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고민 속에서 ‘마을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생각해봤다. 일본에서 이미 주목을 끌었던 ‘산촌자본주의’의 가평군 모델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마을 자본주의’는 예전부터 우리 마을공동체가 갖고 있던 자본의 가치를 제대로 활용해서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역발상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일단 그 원초적 개념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해 본다. 우선 사람을 중심으로 한 자본을 강화해야 한다. 즉 이전 마을공동체가 갖고 있던 사람간의 ‘관계’와 ‘신뢰’의 자본, 흔히 ‘사회적 자본’이라고 하는 마을자본을 강화해야 한다. 그동안 마을공동체를 살리겠다며 정부가 성급하게 보조금을 지급한 것은 마을에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켜 오히려 마을의 사회적 자본을 고갈시켰다. 이웃에게 정나미가 떨어져 떠나고 싶은 마을이 됐다면 그 마을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마을이다. 마을 ‘구하기’는 그래서 먼저 마을주민들 간의 관계를 복원하고 신뢰를 쌓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마을이 갖고 있던 다양한 자연자원을 재조명하고 활용해서 마을 자본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마을 자산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과 식량과 연료가 이미 가평군의 자연 속에 차고 넘쳤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는 그것들을 돈으로 사서 쓰고 있다. 그것도 우리의 것을 싸게 주고 외부의 것을 비싸게 사고 있다.

 영국에서 2011년 제정된 로컬리즘 액트(localism act, 지역주권법)는 ‘1 매각자산에 대한 커뮤니티 우선입찰권, 2 공공서비스 공급 및 운영에 대한 커뮤니티 우선참여권, 3 마을계획권, 4 커뮤니티 부동산 개발권, 5 유휴 공공토지 활용 요청권’ 의 5가지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마을 자본’을 지켜 마을공동체를 지속 성장시키겠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자치단체 최초로 ‘마을자본주의 기금’을 제안해본다. 어떤 마을공동체가 공익적 목적을 위해 사업을 제안하면 그 사업 실행을 위해 무이자로 빌려주고 30년 후 상환하게 하는 것이다. 외부의 자금 지원 없이도 마을이 자립적으로 지속가능한 사업을 펼쳐가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미 가평군의 여러 마을들은 한강수계관리기금, 발전소 지원기금, 송전탑 지원기금 등 다양한 마을기금들을 갖고 있다.

 저성장과 저소득이 지속되는 뉴노멀(New Normal)시대, 마을은 이미 오래 전부터 뉴노멀 시대였다. 그래서일까, 세계는 마을과 로컬리즘을 주목하고 있다. 이미 지난 수십 년간 저소득 저성장을 경험했던 마을이 소멸의 위기를 극복한 스토리 속에서 현재 세계가 직면한 뉴노멀 시대의 위기를 극복할 변화의 방향과 단초를 찾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전 세계 작은 마을들의 다양한 성공 스토리는 ‘마을자본주의’의 이론적 근거가 될 것이고, 마을의 성공을 가능케 한 로컬리즘은 ‘마을자본주의’의 철학적 배경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마을 소멸의 위기를 맞고 있는 가평군이 ‘마을자본주의’를 통해 부흥의 기회를 갖게 되길 희망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