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사진작가도 아닌 그를 인터뷰해 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한 통의 전화 때문이다. "돈대에 미친(?) 사진가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강화도 맘갤러리 마니 관장의 추천에 귀가 솔깃했다.

사진작가 오정식(56)이 ‘돈대 작가’로 통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역시나 돈대에 대한 이야기가 막힘없이 술술 흘러나왔다.

"돈대는 강화도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돌이나 흙으로 쌓은 소규모 관측·방어용 군사시설이죠. 조선 숙종 때 48개 돈대가 설치되고 그 후로 더 세워져 문헌상 53개가 있어요. 하지만 용두돈대까지 합치면 총 54개가 있답니다."

그의 가슴에 돈대라는 존재가 꽂혀 있는 이유는 뭘까?

"사진기를 들고 다닌 8년 세월 중에 6년을 바쳐 오로지 돈대만을 촬영하고 있어요. 우연히 본 돈대에 마음에 뺏겼다고나 할까요? 폐허가 되거나 관리가 안 돼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는 돈대를 촬영·기록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어느 순간 생겼답니다. 영주돈대 인근에 길쭉한 모양의 돌이 비스듬히 누워 있는 걸 보고 과거 외세의 침입 때 목숨을 바쳤던 한 병사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찡했죠."

오정식 작가가 강화 돈대를 촬영한 사진은 무려 5만여 컷이나 된다. 이제 거의 다 촬영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펄쩍 뛰며 "아직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알려지지 않은 돈대의 모습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요. 돈대를 소개하는 안내표지판이 쓰러져 있거나 복원한 돈대들이 이전의 모습과 달리 인위적인 면이 가미된 걸 보면서 누군가는 이를 지켜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남아 있어요."

사진 작업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에 돌아온 답변이 걸작이다.

"주말이면 강화도 돈대 근처에서 야영하며 사진을 찍어 거의 혼자서 일을 해요. 하나의 돈대를 계절별로 담고 또 안개 낀 모습, 비를 맞고 있는 돈대 등을 모두 찍으려면 거의 1년이 걸려요. 수박 겉핥기 식 사진이 아닌 진정한 사진을 찍고 싶다고나 할까요? 이를 두고 걱정하는 주위 사람들이 많지만 저는 행복해요. 행복하니까 하는 거죠."

1679년 숙종 때 80일 걸려 세워진 48개 돈대 등을 혼자 무려 6년간 촬영해 ‘돈대 작가’로 통하는 그의 전시가 오는 5월 21일까지 강화도 맘갤러리에서 열린다. 계양구청 계양아트갤러리와 사진공간 배다리에서도 이전에 선보였던 작품들을 포함한 오정식 작가가 가장 아끼는 작품 총 29점을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다.

김경일 기자 ki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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