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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명훈 경기도농업기술원 원예연구과장
영국 왕실의 문장은 ‘튜더로즈(Tudor Rose)’이다. 흰색 장미 문장을 사용하는 영국 왕족 요크가(家)와 붉은 장미 문장을 사용하는 랭커스터가(家)가 왕위 계승권을 둘러싸고 이른바 장미전쟁이 1455년 시작됐는데 치열한 왕권 다툼은 1485년 랭커스터 왕족 튜더가(家) 헨리(Henry)가 승리를 거두며 30년의 장미전쟁이 끝났다. 전쟁에서 이긴 헨리7세는 요크가의 공주 엘리자베스를 왕후로 맞아들이고 왕실의 장미문장도 랭커스터가의 붉은색 장미와 요크 가의 흰색장미를 합쳐서 튜더로즈라는 문장을 만들어 화합을 상징했다. 이후 영국의 국화는 장미로 지정됐으며 튜더로즈는 영국 왕실의 문장으로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장미 수입국가인 우리나라를 장미 수출국가로 탈바꿈시킨 경기도농업기술원 장미육종팀은 2010년 ‘딥퍼플’장미를 육성했다.

 붉은색과 흰색을 모본으로 육성한 ‘딥퍼플’은 붉은색 바탕에 흰색이 어우러져 분홍색이 배색된 장미로 영락없는 튜더로즈 형으로 장미전쟁 이후 525년 만의 부활이다. 튜더로즈형 ‘딥퍼플’은 1주당 1달러의 로열티를 받고 수출되는 품종으로 2016년까지 9억 원의 로열티를 받고 있으며 러시아 국제화훼박람회(2012년), 네덜란드 쿠켄호프 꽃축제(2014년), 일본 도쿄플라워엑스포(2015년)에서 연거푸 3차례 그랑프리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도 대한민국 최우수품종상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해 화룡점정을 찍었다. ‘딥퍼플’ 품종이 큰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영국 왕실의 화합을 상징하는 튜더로즈형 장미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가수 이수만의 노래 ‘장미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는 순전히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현대장미는 향기가 사라진 지 오래다. 장미 품종은 고대장미와 현대장미로 나눌 수 있는데 고대장미는 육종가의 손을 거치지 않은 19세기 이전의 장미로 주로 정원에서 가꾸는 장미이며, 현대장미는 20세기 들어서 원예육종가의 손을 거쳐 신품종이 개발된 장미를 말한다.

 고대장미의 대표적인 품종은 ‘다마스크’로 십자군이 터키에서 유럽으로 가져온 자연교배 품종으로 화색이 분홍색이며 장식적 가치는 없으나 최고의 향기를 자랑해 향수의 원료를 추출하는 대표적인 장미이다. 이렇듯 향기가 많은 정원용 고대장미는 해충을 포함한 벌 나비 등을 유인해 피해를 입기 십상이다. 그래서 장미 육종가들은 병해충의 유인이 적은 향기가 나지 않고 화색이 화려하고 절화수명이 오래가고 가시가 없는 절화장미를 선발하다 보니 이런 장미를 고대 정원장미와 비교되는 현대장미로 구분했다.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는 자기보다 6세 연상이며 이혼녀인 조제핀을 무도회장에서 한눈에 반하게 됐는데 조제핀은 장미향을 즐겨 사용하는 여인이었다. 이후 조제핀은 프랑스 황후가 되고 나폴레옹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갖고 싶다’며 말메종(Malmaison)식물원이라는 최초의 장미정원을 만들게 됐다. 황후 조제핀은 30만 프랑이라는 거금의 국가 예산을 들여 장미를 열정적으로 수집했고 장미를 좋아한 나머지 중간이름에 ‘rose’를 넣기도 한 장미 애호가이기도 하다.

 장미향이 조제핀 황후의 매력을 한결 높여 주었듯이 모든 고급 향수의 향은 장미꽃 향에서 비롯되었지만 현대장미 품종에서 향기가 풍만한 장미 품종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러던 차에 ‘장미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에 걸맞고 고대장미 혈통을 받은 백색계열의 향기 그윽한 ‘파시나르(fascinar)’향기장미를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육성했다.

 영국 왕실을 상징하는 장미전쟁의 화합 상징 튜더로즈형 ‘딥퍼플’ 장미와 고대장미 혈통을 받은 향기장미 ‘파시나르’를 2017 고양국제꽃박람회(4월 28~5월 14일 고양시 호수공원)에서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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