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형편을 보십시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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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형편을 보십시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영조 전 인천전자마이스터고 교장
  • 기호일보
  • 승인 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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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조 전 인천전자마이스터고 교장
몇 년 전 수요일 밤 예배를 마치고, 마음에 괴롭고 답답한 것이 있어 집에 돌아와 씻는 것도 잊고 망연히 TV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내 그런 마음을 전환케 하는 일이 생겼다. TV에서는 두 다리가 다 없는 불구의 몸으로 결혼해 세 명의 아이를 낳고 키우며 거기에다 남편까지 불구이지만 아주 밝고 명랑한 한 여인을 소개하고 있었다. KBS ‘세상사는 이야기’로 삶과 애환을 집중 조명한 프로그램인데 그 여인은 아주 명랑하게 노래까지 잘 불렀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명랑했고, 자신감도 있었고 거기다가 하나님에 대한 감사까지 있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스러운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녀 앞에 죄송하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저런 사람도 저렇게 밝고 씩씩하게 살아가는데 사지백체(四肢百體)가 멀쩡한 내가 힘들다 하는 것이 사치스러운 짓이오, 죄인만 같았다. 고통(苦痛)은 누구에게나 있다. 종류가 다를 뿐이다.

 뉴욕에서 사회에 영향력이 있는 웨이트사이드 침례교회 목사는 자신의 예(例)를 들어 이런 고백을 했다. 어렸을 때 형(兄)과 함께 자랐는데 어려서부터 아버지에 대한 인상이 남는 것은 아버지의 술 마시고 주정하는 모습이었다. 이들 두 형제는 커서 형은 아버지처럼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동생은 절대 금주주의자(Teetotaler)가 되었으며 뒤에는 목사(牧師)가 됐다. 이렇게 달라진 형제의 모습을 심리학자의 연구대상이 되어 "왜 당신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습니까?"하는 물음을 받았을 때 둘 다 똑같이 "제 형편을 보십시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하는 대답이었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속에는 형은 주어진 환경에 삼켜졌고 동생은 주어진 환경을 축복으로 바꾼 것이다. 거센 바람이 불 때 닭은 자신의 날개 속에 얼굴을 파묻지만 독수리는 그 바람을 타고 더 높은 곳으로 더 빠른 속력으로 날아간다.

 네덜란드 격언에 ‘바이킹(Viking)은 북풍에 시달릴 때 큰 배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바이킹은 옛날 북유럽에 살던 소수민족이지만 일찍이 조선술을 개발해 세계를 정복했던 민족이었다. 그들은 자기네 땅이 춥고 좁으며 바람이 많아 고통스러운 환경이었으나 그것에 삼켜지지 않고 도리어 그것으로 인해 큰 문명을 일으키고 큰 조선술을 개발한 것이다. 끓는 물이 위험하기도 하지만 끓는 물을 잘 이용만 하면 얼마나 유용한가. 깨끗하게 하고, 부드럽게 하고, 편리하게 한다.

 번연(Bunyan)의 명작(名作)「천로역정(Pilgrim Process)」은 얼음장 같은 추운 감옥에서 집필됐다. 그 고통이 평안 속에서는 도저히 상할 수 없는 상상력을 일으켜 천국의 소망을 주는 불후(不朽)의 명작을 남기게 된 것이다. 밀턴도 역시 두 눈과 모든 사회적 지위를 잃고 나서야 깜박거리는 호롱불 밑에서 실낙원(Lost Paradise)을 썼다. 프랑스의 파스퇴르는 반신불수였으며 가끔 졸도하는 증세까지 있었는데 병균연구와 많은 백신(면역체)을 개발해 세균학의 대가가 됐다. 현대 물리학에 아인슈타인을 뛰어 넘는 천재라고 격찬하고 있는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머리 부분만 빼고는 모든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임을 우리가 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한이 없다.

 빅토와 고첼이라는 하버드대의 두 젊은 교수가 인류에게 공헌한 300명의 통계를 발표했는데 그 통계 중의 25%가 신체장애인인 맹인, 농아, 소아마비, 성불구였으며, 75%는 가난한 환경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고통의 해결책을 외부에서 찾지만 사실은 고통 속에 길이 있고 가치가 있고, 축복이 있는 법이다. "아플 때를 잘 알아야 한다"는 말처럼 고통을 지긋이 씹어보는 인내의 과정을 거쳐야 사람이 사람다워진다. 야외로 소풍을 가기로 한 날을 받아 놓았는데 전날 날씨가 흐렸다. 한 선생님이 내게 전화를 걸었다. "비가 온다는데 내일은 어떨까요?" 내일 비가 올지 안 올지는 기상대가 더 잘 알겠기에 나는 좀 더 의미 있는 대답을 했다. "비는 반드시 멈추게 돼 있습니다." 즉 고통의 시간은 길지 않고 반드시 끝난다는 의미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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