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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비로소 촛불 대선의 막이 내렸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상 초유의 사태로 빚어진 이번 대통령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후보자들의 정책과 도덕성에 대한 정확한 검증과 판단이 유보된 채 치러진 졸속 선거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감 또한 과거 어느 대통령에 비해서 결코 가볍지 않다. 그만큼 대한민국이 직면한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용절벽에서 추락해 공무원 시험에 사활을 거는 청년들이 고시학원에 넘쳐나고, 고령화사회 진입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노인 복지 비용뿐만 아니라 각종 복지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비혼과 만혼을 비롯해 보육과 사교육 문제도 개선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번 새 정부는 이러한 여러 가지 사회 문제 이외에 국내외적으로 시급하게 해결하거나 심각하게 대응해야 할 상황과 만나게 됐다. 그 가운데 하나는 저출산 사태이고 또 하나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으로 대두된 과거와 전혀 다른 차원의 북핵 사태이다. 새 정부가 집권 기간 동안 이 인구절벽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조만간 국가 경쟁력 약화와 함께 쓰나미급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잃어 버린 20년을 견고한 펀더멘털로 견뎠지만 대한민국에 그런 능력이 있는지는 생산 가능 인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100조 원 이상의 돈을 쏟아 붓고도 오히려 16년째 초저출산의 덫에 걸린 지 10여 년이 지났다. 당장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출산절벽이 안보에 버금가는 급박한 사회 경제적 문제라는 점을 새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우리에게 인구 문제는 국가 미래의 운명이 걸린 가장 중차대한 문제이다. 따라서 인구재앙은 결국 국가재앙으로 치닫을 것이라는 측면에서 이를 막기 위한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한편 새 대통령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북핵 문제에 가장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면모를 보이는 대통령을 상대로 북핵을 해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세계를 상대해야 하는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은 그리 큰 관심을 가질 만한 국가가 아니다. 물론 이란 핵 때문이기도 했지만 오바마 대통령도 재임 기간 북핵 해결에 미온적이었다. 5공 정권과 각별했던 레이건 대통령 정도를 제외하면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한국에 대해서 그리 우호적이지 않고 무지한 면도 있었다. 트루먼이나 카터뿐만 아니라 클린턴을 비롯해 부자(父子) 부시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이 아닌 한미 FTA에, 한반도가 아니라 미국에 위협이 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사업적 마인드로 무장한 트럼프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달리 이 문제를 미국의 실리를 최대한 극대화하려는 측면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들이 늘 그렇듯이 지키지도 않을 그럴 듯한 약속을 일삼는 중국의 전략에 휘말려 적당한 선에서 체면을 세우고 물러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한국 외교가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동안 일본뿐만 아니라 이미 중국도 트럼프에 대한 분석을 끝내고 자국의 실리를 챙기는데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우리가 견딜 만한 비용을 지불하고 평화적으로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할 수 있는 기회는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 그만큼 북핵문제는 한국의 새 대통령에게는 위기이자 기회가 될 전망이다.

 만일 더 이상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한국 정부가 배제된 채 북한과 미국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대한민국은 핵무기를 머리에 얹은 채 최악의 안보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반면에 미국과 일본, 중국의 군사적·경제적인 힘과 영향력을 지혜롭게 이용할 수만 있다면 북한 핵 폐기의 기회도 찾아올 것이다. 물론 그 기회는 전적으로 새 정부의 역량과 대통령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지키기 어려운 공약은 단호하게 포기하더라도 집권 기간 내에 우선적으로 저출산 문제와 북핵문제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성공한 대통령을 내는 국가가 될 것이다. 새 대통령에게 큰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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