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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드디어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낮은 자세와 겸손한 모습의 파격 행보(?)가 시작됐다. 지난 18대 대선 직후의 모습과 판이하다. 새로운 분위기가 싹트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시민의 촛불혁명’이 성공하고 ‘태극기·성조기 대열의 반대’가 좌절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국민은 물과 같아서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전복시키기도 한다는 ‘민수(民水)론’의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을 탄핵으로 갈아치운 ‘국민의 집단 기억’이 이번 선거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하겠으나 한편으로는 이 기억이 새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데 활용되면 어쩌나 걱정하는 것이 기우에 불과할까?

 이런 염려는 ‘우리 국민의 수준’에 대한 의구심에서 나온다. 지난 반년간의 국정 혼란기는 사실 우리가 갖고 있는 역량과 수준, 그리고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 결국 ‘어느 나라나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는 정치사상가 토크빌의 지적이 지난 18대 대선과 이번 19대 대선에서 바라본다면 우리 국민의 수준이 일취월장 향상됐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는지….

 저명한 법률가 한 분은 "나는 절대 찬성할 수 없는 홍준표 후보를 지지한다 한들 방식과 내용이 낡긴 했는데 정치력은 인정. 재밌고. 어쩌란 말이냐. 대화하고 설득할 수 있을 뿐"이라고 페이스북에 적어 화제가 됐다. 누구를 지지하건 반대하건 그건 오로지 각 개인의 몫이다. 이웃을 배려하기보다 자기 이익을 앞세우는 님비(NIMBY)현상은 이제 고질병 수준이 된 지 오래인데 남 탓은 하나마나한 일일 것이다. 근대 민주주의 사회 수준을 시민성(citizenship)의 정도로 판명하는 것도 오래된 일이다. 시민성이란 국민 개개인이 사회적 존재로서 공공성과 공공선에 대한 헌신의 의지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 국민의 자질이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할 수는 있겠으나 시민성의 수준에서 보면 멀어도 너무 멀어졌다고 할 수도 있다. 공공선에 대한 헌신까지는 기대하지 않아도 공공성에 대한 인식조차 희박한 것이 우리 시민의 현주소 아닌가.

 청나라 말기 아편을 들여와 중국인을 오염·타락시킨 영국에 맞서 싸운 증국번(曾國藩)은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조짐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무엇이건 흑백을 가릴 수 없게 되는 것. 선악의 구별이 불명확해지고 영합적인 태도를 갖는 교양의 결핍을 지적한 것이다. 확실히 틀렸거나 나쁘긴 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받아들인다는 거품 같은 인식이다. 둘째는 선량한 사람이 갈수록 조심스러워지고 하찮은 인물들이 더욱 설친다. 전율할 상황이다. 꼼수가 전략으로 둔갑하고 정당한 비판이 배신으로 매도당하는 현상이 일반화돼 있다.

 셋째는 문제가 심각해졌을 때 마땅히 원인을 찾아 척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지당한 일이고 저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투의 자세가 횡행한다.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는 우유부단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일찍이 프랑스의 정치가 로벨 슈망은 그의 저서 「유럽을 위해서」에서 ‘정치상의 최악의 태도는 결정을 행할 수 없는 태도요, 더 나쁜 것은 서로 모순된 결정을 하는 것’이라고 갈파했었다.

 새 대통령에 대한 희망과 요구 사항이 언론을 통해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동원해 넘쳐나고 있다. 친인척·측근들의 농단을 경계하라. 아마추어 폴리페서의 중용을 삼가라. 좋은 인재를 알아보고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라. 정치를 국회로 되돌려 안정시켜라. 비현실적 인기 영합 공약은 과감히 폐기하라. 한미 동맹에 기초해 외교·안보에 있어 한국 때리기(Korea Bashing)와 한국 따돌리기(Korea Passing)를 해결하라 등등.

 이제 이 어수선한 정국은 새 대통령이 수습할 터이니 우리 국민은 무엇부터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할 때가 됐다. 우리의 공공성을 추구하는 ‘시민의 역할’을 생각하면서 수준 높은 시민성 구현에 매진하는 일이다.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시작한 새 대통령 문재인과 유쾌한 정숙 씨가 청와대에 새로운 기풍을 만드는 일은 그 두 사람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짓과 사욕, 방자와 사치에 빠진 우리 사회의 통절한 문제는 국민 스스로 새 시대를 맞이하려는 자기 성찰에서 해결해야 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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