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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기대 광명시장
2012년 7월 어느 날, KTX광명역세권에 이케아와 코스트코의 유치를 확정 지은 직후였다. 10여 명의 광명지역 중소상인들이 시장실을 찾아왔다.

 그들의 눈빛은 매서웠고 분위기는 서늘했다. 가뜩이나 경기도 좋지 않아 힘든데 대형 유통기업마저 역세권에 들어서면 지역의 소상공인들은 모두 거리로 나앉게 될 것이라는 하소연을 들었다.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했다. 제가 정치를 시작하고 광명시장이 된 이유는 지역의 경제발전을 통해 힘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제가 추진하는 정책이 어려운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속이 무너지는 듯했다. 하지만 수년째 허허벌판으로 방치된 광명역세권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광명시는 지역발전과 중소상인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만 했다.

 상생, 서로 북돋아 다 같이 잘 살아간다는 의미다. 전쟁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는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대기업은 악이고 중소상인들은 선이라는 적대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를 버려야만 했다.

 이케아, 코스트코, 롯데아웃렛 등의 대형 유통기업은 지역민의 소중한 일자리를 만들 수도 있고, 지역 소상공인들에게는 새로운 판로가 될 수도 있다. 이 점을 강조해서 이해 당사자들을 설득하고 경청하고, 또다시 설득하기를 반복했다.

 코스트코는 정규, 비정규 직원 채용 시 광명시민을 우선적으로 채용했다. 이케아와 롯데아웃렛까지 합해 1천여 개의 일자리가 새롭게 생겨났고 대부분 광명시민들에게 돌아갔다.

 이케아는 100% 자사제품만 판매한다는 본사의 방침과 달리 전 세계 매장에서 최초로 광명시 가구유통사업협동조합에 1천150여㎡ 규모의 전시 판매장을 제공하기로 했다. 우리 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중소 슈퍼마켓 상인들을 위한 공동물류센터도 짓고, 전통시장에는 고객쉼터와 주차타워를 새롭게 만들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연 2회 가구축제를 열어 지역 가구거리를 활성화하고 안내판을 설치해 시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으며 롯데아웃렛이 들어설 때는 인근 중소 의류업체 상인들이 입점할 수 있도록 광명시가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케아가 건립해 시에 기부채납하는 형태로 광명동 원도심 지역에 주민건강센터도 만들기로 했다.

 2017년 5월, 광명전통시장 공영주차장 개장식과 주민건강센터 기공식이 열렸다. 광명시 상생협력의 역사에 화룡점정과도 같은 행사였다. 제게는 시장을 두 번 역임하는 동안 가장 뜻깊은 날이었다. 시장 상인들은 꿈같은 일이라며 감격했고, 어렵고도 험난했던 상생 협력을 이뤄냈다는 보람과 성취감이 한껏 느껴졌다. 이제 KTX광명역세권은 전국적인 규모의 쇼핑특구로 새롭게 태어났고 광명동굴과 연계해 광명시가 관광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광명시의 사례가 널리 알려지면서 상생협력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해 당사자들의 양보와 타협,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 그리고 행정기관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청하는 자세다.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과 주장을 끝까지 듣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신뢰를 만들고 이 신뢰를 바탕으로 상생과 협력이 가능한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이분법적 사고를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도전정신도 꼭 필요한 덕목이다.

 물론 광명시의 사례가 정답은 아닐 수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세계 경제의 흐름이다.

 유통산업뿐 아니라 모든 산업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격동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역경제의 상생협력 모델도 언젠가는 새로운 모멘텀을 맞아 위기가 찾아올 것이고 이에 따른 진화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지자체의 몇 가지 노력과 이해 당사자들의 마음가짐만 있다면 ‘상생’ 그 본래 의미대로 서로 북돋아 다 같이 잘 사는 길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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