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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한경 인천시의회 운영위 수석전문위원
얼마 전 평창에서 전국 시·도의회 운영위원 합동 연찬회가 있었다. 시·도의회의 공동 이해관계를 협의하고 지방자치의 정착과 지역 간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의 행사였다. 행사의 일환으로 ‘분권형 헌법 개정과 지방의회의 역할’, ‘헌법개정의 쟁점과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가 진행됐다. 핵심 내용은 어떻게 하면 지방의회의 역할과 지방자치를 강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였다. 최근 전국 광역의회와 기초의회가 지방분권을 위한 개헌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지방분권에 대한 다양한 요구가 어느 때보다도 고조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하듯 시종 진지하고 열띤 분위기였다.

 토론회와 그동안 제기된 다양한 의견 중에서 가장 우선적이고 핵심적으로 논의된 과제를 3가지로 요약해 본다. 먼저, 지방재정의 자주성 확대다. 현재의 조세 구조는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이 8:2 정도로 나타나고 있는데 조세법률주의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독자적으로 별도의 세목이나 세율을 정할 수 없다. 지방세는 주로 부동산 경기에 민감한 아파트 거래 등 재산과세 위주로 돼 있어 외부 요인에 취약하고 안정적 세입 전망이 어렵다. 사회복지분야나 국고보조사업이 지방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증가하지만 국고보조율은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조건부 국고보조금의 확대는 지방비 부담이 증가돼 지방재정의 자율성과 건전성을 제약하고 있다. 자치사무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조건부 국고보조금을 축소하고 일반 재원화할 수 있는 보조금 확대와 지방세의 조세 부담률 상향 조정 등 자치재정권이 보장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둘째, 자치입법권의 보장이다. 현행 헌법과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그 사무에 관하여 조례를 제정하되 주민의 권리 제한이나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 벌칙을 정할 때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 자료에 따르면 국가 전체사무에서 광역자치단체가 취급하는 사무는 27%, 기초자치단체는 많아야 10% 정도라고 한다. 조례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제정돼야 하고 기초자치단체의 조례는 광역자치단체의 조례 범위를 넘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조례 시행에 수반되는 재정수요는 열악한 지방재정을 감안할 때 자치입법을 더욱 어렵게 한다.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의원발의 조례안은 매년 증가 추세에 있으나 강제성이 없는 임의조례가 주를 이루고 있고, 조례의 입법취지와 실질적인 내용보다는 조례발의 건수를 지방의원 의정활동의 중요한 잣대로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개선돼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특색과 실효성 있는 활발한 입법 활동을 위해서 자치입법권은 확대돼야 한다.

 셋째, 정책 보좌기능이 강화돼야 한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정책보좌관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국가사무의 대폭적인 이양에 따른 지방사무증가, 행정의 전문화, 복잡화, 다양화 추세에 따라 지방의원도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요구를 반영해 19대 국회에서 관련 법률 개정안이 소관 상임위까지 통과됐으나 결국은 임기 종료에 따라 폐기됐다. 다행히 같은 내용의 법률안이 20대 국회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그동안 인천과 서울 등 여러 지방의회에서는 예산이나 조례를 통해 정책보좌관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법령의 범위 안에서’라는 장벽에 막혀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더 이상 정책보좌관의 역할에 대한 논란, 국민 공감대 형성이나 정서상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미룰 일이 아니다. 정책지원 전문인력 도입으로 지방의원의 전문성을 높이고 집행기관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을 제대로 할 때 그 이익은 결국 주민에게 돌아가고 지방자치가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에 대한 요구가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요구되는 가운데 지난 대선에서 각 당의 후보자 모두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지방분권을 위한 헌법 개정을 약속했다고 한다. 이제는 명실상부한 지방자치 실현에 필요한 법적·제도적 근거, 지방의회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와 신뢰를 바탕으로 그에 상응하는 의정활동 성과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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