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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소설가
교통사고 이후 운전을 하지 않으면서 멀어졌던 라디오를 근래에 다시 듣게 됐다. 적당한 백색소음은 마음을 안정시켜 경직된 신경을 풀어주고 집중도를 높여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서 원고 작업할 때 도움이 된다. 딸아이 방에서 먼지 뒤집어쓰고 있던 오디오를 꺼냈다. 아담한 사이즈가 마음에 들어서 글 쓰는 컴퓨터 방 선반에 올려놓았다. CD로 음악도 듣고 FM으로 음악 프로그램도 청취한다. 펑키나 랩 음악이 나에게는 주종목이 아니어서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에 들었던 팝송이나 발라드의 리듬은 익숙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추억 소환으로 마음이 달달해진다. 비 오는 날에 듣는 노래 선율은 감성 촉촉해져 맛이 제대로 살아났다. 좋아하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서른은 아직 이르고 마흔 즈음 왔을 때, 절절하게 가슴을 치는 가사 같은데 뮤지션의 서른 즈음은 깊고 조숙했었나 보다. 나이를 먹는 불안감을 이보다 더 치밀하게 표현해 낸 뮤지션을 찾을 수 없다. 정작 그는 사십도 살지 못하고 서른 즈음인 33살에 전깃줄로 목을 맸다. 그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는 군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의 복음가가 되었고 ‘먼지가 되어’, ‘바람이 불어오는 곳’ ‘사랑했지만’,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같은 노래는 삶의 고뇌를 실은 선율로 힘든 삶을 위로해 줘 최고의 음유시인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패닉의 ‘왼손잡이’도 좋아하는 노래다. 다양성 시대라고는 했지만 전혀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았던 세태를 향한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한 노래다.

 015B의 ‘수필과 자동차’,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김수희의 ‘애모’ 같은 노래는 멜로디로 노랫말로 삶의 한 축을 깊게 해 주었다. 세월은 흐르고 정서도 낡아가지만 예전 가슴에 각인됐던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온갖 기억과 회한과 조금은 성숙해졌을 세월의 흔적이 강물처럼 흐른다. 하구에 다다른 강물은 느린 숨으로 휘돌고 내쳐 달리던 속도를 멈추게 해 느리게 흐르지만 그 속엔 퇴적된 부유물들이 쌓여 있어서 장엄할 수 있겠다. 팝송 부르는 취미가 아마추어 단계를 넘어선 분이 본인이 부른 CD를 선물했다. CD 2장에 녹음한 12곡의 팝송을 요즘 자주 듣는다. 그 중에서 ‘빈센트(Vincent)’를 듣고 있으면 가슴에 강물이 흐른다. 천상 어디에선가에서 빈센트 반 고흐는 이 노래를 듣고 있을까, 혼자 상상해 본다. 돈 매클린(Don Mclean)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아름다운 선율이 화가의 혼이 담긴 붓질로 ‘빈센트’ 노래가 흐르면 노랫말에 눈물이 나곤 했었던 기억이 난다.

 "별이 많은 밤입니다. 팔레트에 파란색과 회색을 칠하세요. 내 영혼에 깃들인 어둠을 알고 있는 눈으로 여름날에 바깥을 바라보아요." 빈센트의 그림처럼 보석으로 빛나는 문장 한 줄 남기고 싶은 열망을 가슴에 품었다.

 아일랜드를 여행 간 적이 있다. 누구나 문학가가 되어 작품 하나쯤은 가슴에 새겨 넣을 자연 풍광과 날씨가 마술 같았던 나라였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에 아일랜드 가슴앓이를 하면서 즐겨 들었던 노래가 있다. 아일랜드의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크리스 디 버그(Chris De Burgh)의 노래 ‘레이디 인 레드(Lady in Red)’다. 무엇일까, 입안이 아릿하고 쓸쓸한 한숨이 애틋하다. 한숨처럼 나오는 고백이 애잔해 듣고 있으면 먹먹해진다. 몽환적인 목소리에 핍박으로 굴곡 많았던 아일랜드의 정서가 녹아 있어서 한을 품은 목소리 색깔을 가지고 있는 가수다. 아일랜드 이주자였던 그는 미국과 영국이 집어삼킨 팝 시장에서 돌풍까진 아니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변방이었던 아일랜드의 정서를 노래로 대변했다. 아일랜드 정서를 노래하는데 최적화된 가수라는 생각이 든다. 노래는 세월에 녹아 가슴에 나이테를 만들고 우리는 흘러가는 세월에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듯, 그렇게 흘러서 바다를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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