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현1·4동 주민들이 원탁회의를 하고 있다.
인천시 남구 수봉공원으로 오르다 보면 감나무 가로수길이 이어진다. 언제, 누가 심었는지 모를 감나무는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며 도시와 함께 나이 들었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 나무는 마을의 골칫거리가 됐다. 계절이 바뀌면 떨어지는 낙엽에 엉망이 된 길을 치우는 사람 없이 골목은 삭막해져 갔다. 오가다 마주하는 이웃들은 머리를 맞댔고 함께 감나무 잎을 치우기로 했다. ‘버려지는 잎을 활용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인근에 버려진 공터를 텃밭으로 가꾸며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동안 공동체는 회복됐다. 원도심 속 작은 마을, 용현동 감나무 통두레 이야기다.

▲ 유진수 남구 마을만들기 지원팀장
마을공동체는 단순하다. 주민들이 있고 이들이 필요를 가지고 만나면 공동체가 된다. 유진수(50)남구 마을만들기 지원팀장은 마을공동체에 있어 ‘주민 주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07년 서구의 시민단체에서 마을만들기를 시작한 유 팀장은 2014년부터 기초단체에서 개방직으로 근무하며 주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행정이 나서 마을 공동체 지원을 시작한 지는 불과 4~5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2013년부터 올해까지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사업을 통해 총 250곳의 공동체를 지원했다.

 교육·협력 등 중간 역할을 담당하는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도 서서히 자리잡는 중이다. 그에 비해 인천에서 자생한 공동체의 뿌리는 깊고 견고하다.

 유 팀장은 자생한 단체들의 사례가 앞으로의 마을공동체 사업의 방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인천에서는 1970년대 공단이 지어지면서 활성화된 대학생 선교·야학 등 빈민운동을 지원했던 사업이 마을만들기로 이어졌습니다. 1990년대에는 주민들이 공부방을 열어 아이들을 함께 교육한 것이 공동체가 됐습니다. 그렇다 보니 지역에 자생적으로 오래된 공동체가 많습니다."

전국 주민공동체의 시초로 여겨지는 인천평화의료생협부터 청천동 동네야 놀자, 연희동 다살림 레츠 등은 10년여의 역사를 보낸 뒤 주민들의 풀뿌리 활동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 공동체가 자생할 수 있었던 비결은 ‘주민의 필요’였다. 각각의 필요에 의해 공동체 활동이 시작됐고, 이들이 주체가 돼 활동하고 있다. 도시에서 가족이 행복하고 싶다는 필요는 육아, 교육, 취미를 함께 하는 공동체가, 의료비 걱정 없이 지내고 싶다는 바람은 의료공동체가 됐다. 획일적인 재개발에 밀리지 않고 옛 동네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은 원도심에 공동체를 만들었다.

▲ 호미마을 마을계획 보고회에 참석한 주민들.
필요와 함께 성장하는 마을공동체는 그 속도가 느리다. 구성원이 그 필요에 충분히 공감하고 발 맞춰 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유 팀장은 행정이 그 시간을 기다려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쉽게도 그동안 행정이 공동체를 기다려 주지 못했습니다. 1년짜리 단기 사업으로 투자 대비 정량적 성격을 따지다 보니 주민이 필요로 하는 사업보다는 빨리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들이 진행됐어요. 공동체는 단시간에 형성되거나 정착될 수 없습니다. 최소한 3년은 기다리면서 준비기간부터 지원사업 이후의 자생계획까지 함께 고민할 수 있어야 해요."

▲ 행복한 꽃길 통두레 회원들이 화단 가꾸기를 하고 있다.
지원사업 선발 시 경쟁 평가하지 않는 것은 고민 끝에 도입한 하나의 방안이다. 남구에서는 매년 공모를 통해 올라오는 30여 건의 사업을 가급적 모두 지원하되, 충분한 소통을 통해 공동체에 대한 주민의 이해도를 높이고 적절한 지원책을 찾는다. 당장 자생할 수 있는 사업은 성장할 수 있도록, 스스로 모일 수 없는 지역은 전문가가 지원한다. 이를 통해 도시 곳곳이 고립되지 않고 연결되는 ‘도시 전체의 마을만들기’를 목표로 한다.

 주민들의 욕구와 행정단계가 맞지 않는 경우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지원기관에서도 인재개발원 등을 통해 마을공동체에 대한 교육을 정규화하는 등 지속적으로 전문성을 갖출 필요를 느낀다. 결국 공동체는 ‘주민자치’에 기반하지만 주민들 속에 들어가 그들의 필요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행정의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 도화신동아아파트 주민공간개소식에 참석한 주민들.
"마을만들기는 지역주민의 요구를 그들이 나서 실현하고 주민들 스스로가 실생활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마을만들기가 ‘만들기’로 그치기도 하고 단발적이고 획일적인 사업으로 추진되는 부분이 있지만 지속가능한 마을활동이 되기 위해서는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을만들기가 주민자치로 얼마만큼 성장하는가는 그 시선의 시간, 깊이와 비례하겠죠."

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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