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넘도록 서민 속 달래주던 해장국, 넌 감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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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넘도록 서민 속 달래주던 해장국, 넌 감동이야
지역 3대 해장국집을 찾아서
  • 김종국 기자
  • 승인 2017.07.20
  • 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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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취로 쓰린 속을 푸는 데 해장국만한 것은 없다. 해장국의 본말은 ‘해정국’으로 한자 풀 해(解)와 숙취 정(정)에 우리말 국을 더한 것인데, 음이 변하면서 해장국이 됐다고 한다. 지역별 특산물에 따라 조리법도, 그 맛도 천차만별이다. 주재료는 크게 소, 돼지, 어패류로 나뉜다. 서울의 선지해장국과 경기도 양평해장국, 강원도 황태해장국, 충청도 다슬기탕, 경상도 재첩국, 전라도 콩나물국밥, 제주도 오분자기탕, 함경도 순댓국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소뼈와 소고기, 소 부속물을 기본으로 하는 현대식 해장국의 원조는 ‘인천’이라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883년 개항 이후 소고기를 주로 섭취하는 서양인이 인천항 주변으로 대거 유입된 점과 한국전쟁 전후로 인천에 주둔한 미군부대에 의해 엄청난 양의 소고기가 소비되면서 이를 활용한 ‘인천식’ 해장국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본보는 창간 29주년을 맞아 반세기가 넘도록 인천의 맛을 지켜가고 있는 지역 3대 해장국 집을 찾아가 봤다.

▲ 평양옥
# 평양옥, 해장국 100년의 역사를 꿈꾼다

인천시 중구 신흥동에 위치한 평양옥은 해방 직후 무일푼으로 평양을 떠나 인천에 새 둥지를 튼 김석하·조선옥 부부가 상 하나를 놓고 시작했던 장국밥 집이 모태가 됐다. 지금은 그들의 손자 김명천(53)대표가 올해로 73년째 가업을 잇고 있다. 그는 "1998년 큰 불이 나면서 예전 평양옥 집들은 다 허물고 지금의 건물이 탄생했다"며 "할아버지·할머니가 시작했던 장국밥 집 터에는 나무를 심어 그 뜻을 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단연 해장국이다. 소 마구리(소 척추·가슴 부위 뼈)와 얼갈이배추를 오래 끓여 내는 예전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우거지의 구수함이 매력인 ‘평양옥’ 해장국
그는 "평양옥 해장국이 할머니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53∼1954년이었다"며 "그 전에는 장국 위주로 팔다가 한국전쟁 이후 미군부대의 주둔으로 저렴한 값에 소뼈와 고기를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소뼈 고은 국물에 배추를 넣는 인천식 해장국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연합군 상륙작전의 중심지였던 인천 곳곳에 미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소고기가 귀한 그 시절 소뼈와 부속 고기 등을 저렴한 값에 서민들이 공급받을 수 있게 된 것이 인천식 해장국의 탄생 비화인 셈이다.

이 집 해장국의 가장 큰 특징은 얼갈이배추를 사용한다는 데 있다. 얼갈이배추는 일반 배추와 달리 오래 끓여도 퍼지지 않고 흐물거리지 않아 우거지의 구수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이 집은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방문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1970년대 초 박 대통령이 이 지역 군부대 시찰을 자주 왔는데, 새벽 4시 통행금지가 끝나는 시간에 작업복 차림으로 비서 1명만 데리고 해장국을 먹고 갔다"고 했다.

김 대표는 "우리집 해장국을 전수받은 가게들도 예전에는 많았는데 지금은 모두 문을 닫거나 사라졌다"며 "제 아들이 가업을 이어 적어도 100년의 역사는 꼭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 해장국 집
# 해장국 집, 전통에는 작은 변형도 있을 수 없다

동구 송림동에 위치한 해장국 집은 인천에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아는 소문난 ‘맛집’이다. 하지만 정식 상호가 ‘해장국 집’일 만큼 맛도 분위기도 소박하기 그지없다. 작은 홀에는 오래된 테이블 8개가 전부지만 새벽 5시면 어김없이 해장국을 찾는 단골들로 북적인다. 평일 평균 150그릇, 주말이면 200그릇 정도가 팔려 나간다.

▲ 연탄불로 장시간 고아 만든 ‘해장국 집’의 해장국.
1대 김학준(86)할아버지가 1964년에 문을 연 이 집은 현재 그의 조카인 조정원(44)대표가 가업을 잇고 있다. 조 대표는 "스무 살 때부터 외삼촌 밑에서 일을 배우게 됐다"며 "자식이 없는 외삼촌이 아들처럼 저를 가르치고 키우셨다"고 말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씩 불시검문을 나와 소뼈를 제대로 끓이고 있는지 멀리서부터 냄새를 맡으며 점검한다는 그의 외삼촌의 ‘고집’ 때문에 54년째 조리법은 물론이요, 접시 하나 그릇 하나 바뀌지 않고 전통이 고수되고 있다. 그는 "손님들은 그릇을 바꿔라, 가게를 넓히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지만 외적 변화가 자칫 해장국 맛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서면서 재료에서부터 홀 서빙까지 모든 것을 외삼촌 방식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이 집 해장국은 강원도 태백에서 공수되는 한우의 사골(다리뼈)과 잡뼈를 이용해 오후 3시 영업이 끝난 시간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온종일 은은한 ‘연탄불’에 고아지는 게 특징이다. 여기에 소의 기름기와 잡내, 느끼한 맛을 잡기 위해 쌀가루와 쌀뜨물을 사용하는데, 적당히 삶아진 배추와 함께 나오는 이 집 해장국의 깊고 담백한 맛의 비결로 꼽힌다. 아울러 따로국밥과 반대 개념인 토렴식을 고수하는 것도 눈에 띈다. 밥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를 반복함으로써 덥게 하는 것을 ‘퇴렴’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음운의 변화로 지금은 토렴이라고 불린다.

조 대표는 "수고스럽고 힘들겠지만 외삼촌이 오랜 세월 속에서 지켜온 것을 끝까지 지켜가겠다"며 "전통을 잇는다는 것은 계승자의 취향과 입맛대로 변형을 가하는 것이 아님을 지금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했다.

▲ 부평옥
한편, 동구 송림동 253번지에 위치한 57년 전통의 부평옥 해장국 집은 1년 넘게 가게 문이 닫혀 있었다. 1960년께 문을 열고 3대째 인천식 해장국을 고수하던 주인 아주머니가 불의의 사고로 다리 부상을 입은 데다, 이 집이 뉴스테이 정비구역에 묶이면서 이주를 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 닥쳤기 때문이다. 단골들은 주인 아주머니의 쾌유를 빌며 하루빨리 부평옥 해장국의 담백하고 개운한 맛을 다시 보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종국 기자 kj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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